[사설]朴총리 거취 분명히 해야

  • 입력 2000년 5월 18일 19시 29분


박태준 국무총리가 수십억원대의 부동산을 다른 사람 이름으로 명의신탁(名義信託)해 공직자로서의 투기행위에 대한 비난을 모면하거나 세금을 회피해온 사실이 재판에서 드러났다. 비록 그가 포철회장이나 민자당 대표로 있던 88∼93년까지의 일이고 부동산실명화법(95년7월시행)이 나오기 전 명의신탁이 허용되던 상황의 일이라고는 하나 간과할 수 없는 문제다. 국무위원을 총괄하며 행정부를 지휘하는 국무총리의 과거 행적치고는 심각한 도덕성 이상의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런 진상들은 박총리의 재산관리인이 제기한 소송의 판결문에서 밝혀지고 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문제의 부동산 6건 가운데 4건은 박태준씨와 그의 부인이 사들여 원고(명의수탁자) 명의로 임대사업을 해온 사실이 인정되는바, 그 이유는 공인인 박씨가 재산취득 사실의 공개로 명예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을 막고 종합소득세를 줄일 목적이 있었다고 보여진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이어 “다른 2건의 부동산을 명의신탁한 것은 박씨가 공직자로서 다량의 재산을 취득하는 것이 알려질 경우 입을 불이익을 피하려는 목적이었다”고 판시, 공직자로서 투기 비난을 면하려는 의도임을 분명히 했다. 말하자면 일부는 세금을 줄이려고, 일부는 공직자의 투기행위에 대한 눈총을 피하기 위해 명의신탁을 한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국민경제에 백해무익한 부동산 투기, 그리고 명의신탁을 통한 세금 회피는 시중의 보통사람이나 업자들이라 해도 도덕적으로 비난을 면치 못한다. 하물며 이른바 3부요인의 일원이요, 공직의 대표적인 지위로 꼽히는 총리의 ‘행적’임에랴. 이렇게 부도덕한 사람이 어떻게 총리의 역할을 해낼 수 있을까 의문이다.

비교적 청렴한 처신을 해온 것으로 알려진 박총리가 그런 규모의 재산을 갖고 있다는 부분도 놀라운 일이다. 그가 무슨 수입으로 최소한 구입비용만 58억원이나 되는 부동산을 갖게 되었는지 이것 또한 국민으로서는 의혹거리가 아닐 수 없다. 아무 거리낌이 없는 부동산이라면 왜 명의신탁이라는 편법을 동원하여 숨기려 했는지 궁금하다.

박총리는 ‘법적인 문제가 없다’거나 ‘공인으로서 유감’이라는 말로 넘기려 해서는 안된다. 부동산매입 과정에 대해서도 소명해야 하고, 행정부 공무원을 이끄는 총리직을 수행하는데 문제가 있음을 스스로 인정해야 할 것이다. 씻을 수 없는 흠이 드러난 마당에 자리에 연연하는 듯한 자세를 보이는 것은 이중으로 국민을 실망시키는 행위라는 것이 우리의 판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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