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음악]'방랑歌客' 임재범 4집낸후 자취 감춰

  • 입력 2000년 5월 9일 19시 38분


“나! 산으로 갑니다.”

“그러면 노래는요?”

“그만두죠 뭐.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가수 임재범(37)이 97년 가을경 느닷없이 전화를 걸어와 기자와 나눴던 대화다.

그는 쇼맨만 양산하는 가요계를 떠나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해왔다. 그래도 가수 생활 10년 넘게 ‘방랑 병’과 ‘노래 병’을 번갈아 앓아온 그를 알기에 ‘영원한 입산’이라고는 믿지 않았다. 역시 그는 1년 뒤 3집 ‘고해’를 발표했다. 그러나 이내 또 자취를 감췄다.

▼10년넘게 '방랑병'과 '노래병' 앓아

이번 4집 ‘Story of Two Years(2년간의 이야기)’도 음반만 덜렁 던져놓고 사라졌다. 매니저도 그가 간 곳이 지리산인지 오대산인지 행방을 모른다. 일부에서는 “팬들에게 무책임하다”고 비난한다. 그래도 임재범이 방송 무대의 형식이나 매스컴을 기피하는 경향이 짙어 단기간내에 돌아올 것 같진 않다.

4집의 머릿곡은 ‘너를 위해’. 노래를 들으면 포크 풍 가수의 느낌이 날 만큼 목소리가 부드러워졌다. 임재범 하면 떠오르는 ‘표효’의 이미지도 걸러냈다. 그의 가장 큰 매력인 중저음도 풍성해졌고, 고음의 표현력도 한층 정돈돼 있다. 덕분에 그의 목소리가 담긴 가사의 메시지가 더 솔깃해진다.

‘너를 위해’와 ‘거인의 잠’은 그가 중년에 접어들었는데도 여전히 가슴앓이하며 방황하는 이유를 설명하려는 듯하다. 이들 노래의 가사는 세상의 틀이 싫어 자기만의 틀을 만들어가는 자신의 이야기다.

‘우린 복잡한 인연에 엉켜있는 사람인가 봐/그렇게도 많은 잘못과 잦은 이별에도 항상 거기 있는 너/날 세상에서 제대로 살게해 줄 유일한 사람이 너란걸 알아…’(너를 위해)

‘난 여기 눈을 감고 누워 깨어나기 싫은 잠이 드네. 자유를 꿈꾸기 위해. 탈출을 꿈꾸기 위해…’(거인의 잠)

임재범은 86년 록그룹 ‘시나위’로 데뷔했다. 누구도 흉내내기 어려운 폭발적인 가창력으로 주목을 끌었고, 기괴한 행동으로 ‘가객(歌客)’으로 불렸다. 이후 그는 몇몇 그룹을 거쳐 91년 솔로 음반 ‘이밤이 지나면’ 등을 발표하며, 국내 록의 거목 탄생이라는 기대를 받았다.

요즘도 가수의 가창력을 평가할 때 “임재범 같다”는 게 거의 최고의 찬사다. 그러나 그는 형식을 싫어하는 천성 때문에 방송 스케줄을 펑크내기 일쑤였고, 결국 웬만한 매니저도 “재주는 아까운데…”라며 함께 작업하기를 피했다.

▼가슴앓이의 메세지 절절히 담아

이번 음반 작업은 2년이나 걸렸다. 임재범은 한 곡을 녹음한 뒤 수 주일간 잠적했다 훌쩍 녹음실에 다시 나타나곤 했다. 제작사와의 계약을 지키기 위해 서두른 탓인지 수록곡이 9곡 밖에 안돼 팬들에게 성의가 모자라는 인상도 준다. 그가 산에서 내려와 해명해야 할 부분이다.

<허엽기자>he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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