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로비' 의혹과 前사령관 증언

  • 입력 2000년 5월 4일 19시 06분


우리 군의 ‘백두사업’과 여성 로비스트 린다 김을 둘러싼 의혹의 실체는 도대체 뭔가. 그녀와 접촉한 당시 국방장관과 국회 국방위원장 등 정관계 유력 인사들은 대부분 ‘사적(私的) 관계’였음을 내세워 백두사업 업체 선정에 대한 영향력 행사를 부인하고 있다.

그러나 정황으로 보아 그들의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점이 많다. 더욱이 린다 김의 로비가 상당한 작용을 했을 개연성을 보여주는 증언이 나오고 있어 주목된다.

김영삼(金泳三)정부 시절 기무사령관으로서 린다 김의 행적 등에 대한 내사를 지휘했던 임재문(林載文)씨는 중요한 증언을 하고 있다. 그는 “린다 김의 로비가 백두사업 업체 선정에 작용한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는 보도다. 임씨가 뭔가 나름대로의 근거를 가지고 말한 것이라고 보지 않을 수 없다.

임씨는 또 내사 결과 린다 김을 ‘요주의 인물’로 결론짓고 당시 이양호(李養鎬)국방장관에게 만나지 말 것을 몇차례 권유했다는 것이다. 현 기무사 관계자는 이 사실을 시인하면서도 “로비 때문에 미국업체가 선정된 것으로 보지는 않는다”는 공식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그러나 가격과 계약 조건면에서 문제가 있는 제품이 결국 선정됐기 때문에 린다 김의 로비와 관련, 숱한 의혹이 증폭되는 것이다.

린다 김이 2년간 기소중지 상태에 있다가 지난 2월 자진 귀국해 검찰 조사에 순순히 응한뒤 ‘불구속기소’된 배경에 대해서도 의문이 있다. 누군가가 불구속기소라는 확신을 주었기 때문에 귀국했을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뒤에서 도움을 준 사람은 누구인가. 로비가 진행될 당시 린다 김이 국내로 들여왔다는 30억원중 계좌에 남아 있던 20억원을 제외한 10억원의 구체적 사용처도 궁금하다.

그러나 검찰은 “범죄 행위에 대한 뚜렷한 증거가 아직 없다”며 두고보자는 자세다. 증거에 의해 사건을 기소하는 검찰로서는 원론적으로 맞는 얘기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범죄를 의심할 만한 충분한 사정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수사 단서를 찾아 이른바 인지(認知)수사에 나서는 게 옳지 않은가. 언론이 확실한 증거를 내놓을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식의 태도는 사건의 심각성과 파장에 비춰볼 때 무책임하다고밖에 할 수 없다.

검찰은 기무사와 협력해 이 사건을 철저하게 재수사해야 한다. 유력 인사들과 린다 김 사이에 오간 편지의 유출 경위와 관련한 온갖 추측과 정치적 해석이 나돌고 있다. 수수께끼를 풀 수 있는 길은 신속하면서도 성역 없는 수사밖에 없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