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과외가 범죄는 아니다

  • 입력 2000년 4월 30일 20시 35분


과외의 전면금지가 헌법 정신에 어긋난다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일으킨 파장이 더욱 커지고 있다.

학원과외조차 시키지 못하던 서민층 학부모들은 과외의 전면허용으로 깊은 좌절감에 휩싸였다. 학교의 많은 교사들은 그렇지 않아도 힘겹게 치러온 학원 및 개인 교습자와의 경쟁에 이제는 마치 무장해제를 당한 듯한 허탈감을 감추지 않고 있다.

이와 달리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환영하는 의견이 있는가 하면, 우려 속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헌법재판소의 이번 결정은 96년 1월에 개정한 학원법의 과외교습 관련 조항에 대한 판단이지만, 내용상으로는 1980년 군사정부가 공포한 소위 ‘7·30 교육개혁조치’의 한 부분으로 내려진 전면적 과외금지 조치에 대한 20년만의 위헌 결정이라는 점에서 매우 중대한 의미를 담고 있다.

▼"부실한 입시제도의 산물"

당시 국보위는 과외의 극성과 그로 인한 사교육비 부담 증가가 학부모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의 문제로 확대되자, 과외교습을 전면 금지하고 위반하는 학부모와 교습자를 형사입건, 세무조사, 면직 등의 강경 조치를 취하였다. 군사정부는 과외교습을 도덕적 문제를 넘어서서 반사회적 범죄 행위로 인식한 것이다. 그리고 과외를 물리적으로 금지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생각하였다.

국보위가 과외를 범죄행위로 몰아붙인 것은 교육적으로 보나, 사회통념으로 보나 잘못된 인식이었다. 과외를 범죄로 규정한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 국민의 자유로운 교육 및 학습 활동을 국가가 마음대로 통제할 수 있다는 사고 방식은 절대주의 군주 시절에나 용납되었다.

그러나 국보위의 젊은 군인들은 잘못된 인식의 토대 위에 전면금지 정책을 수립하였다. 과외 전면금지조치는 이후에 여러 정권을 거치면서 단계적으로 완화되었으나 불행하게도 역대 정권에서 과외에 대한 정책 입안자들의 부정적 시각은 변하지 않고 유지되어 왔다.

과외는 학교의 열악한 교육 여건과 부실한 입시 제도가 만드는 산물이다. 학부모들의 지나친 교육열의 표현이라는 주장이 있지만, 옳지 않다. 오랜 유교적 문화 때문에 우리 학부모의 교육열이 다른 나라보다 높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이 과외풍토의 주된 원인은 아니다. 학교의 열악한 교육여건에서는 학생의 능력과 특성에 따라 충분히 학습할 수 없으니 학교 밖에서 보충학습을 받아야 하고, 상급학교 입시방식은 정상적 교육과정 이수보다는 특별한 입시준비를 요구해왔기 때문에 학생들은 과외의 필요에서 벗어나기가 어려웠다.

그러므로 과외 만연과 그로 인한 사교육비 증가에 대응하는 국가정책은 당연히 그 원인인 학교의 교육여건을 개선하고 입시제도를 근본부터 바로잡는 것이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병폐의 원인은 제쳐두고 증상이라 할 수 있는 과외를 물리적으로 금지하는 데에만 급급하였다. 새로운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과외 억제 대책을 세우지 않은 적이 없었고, 사교육비 해소대책을 세우지 않은 적이 없지만, 매번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학교의 교육여건과 입시제도의 정상화에 본격적으로 접근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학교 교육여건 개선 시급"

헌법재판소가 예외적 경우를 제외하고는 과외를 제공하거나 받는 행위를 불법으로 몰아서는 안된다고 결정한 것은 옳은 방향이다. 그런데 정부는 이 결정에 대한 대응으로 현직교사와 교수의 교습행위와 고액과외를 금지하는 법령의 제정을 서두르는 모양이다. 그것도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정부가 진지하게 생각하고 모든 힘을 기울여 추진해야 할 과제는 학교와 대학의 교육여건 개선이다. 적지 않은 대학생들이 외국어와 컴퓨터를 비롯한 여러 교과의 보충학습을 위하여 학원 수강에 나서고 있는 사실을 직시하여야 한다. 그리고 시장이 학교재정을 지원하고자 해도 이를 가로막고 있는 현행 지방자치제도를 비롯하여 교육재정과 교육관리 체제를 재검토하여 획기적 교육재정 확보 대책을 수립하는 것이 시급하다.

[김 신 일(서울대교수·교육학)]

<정윤희기자>yuni@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