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책]"필요한만큼 생산-소비" 지식인 부부의 脫도시記

  • 입력 2000년 4월 21일 21시 18분


▼'조화로운 삶'/헬렌 니어링·스코트 니어링 지음/류시화 옮김/보리 출판사/221쪽/7500원

‘친구여, 뚜렷한 근거가 떠오르거든 어리석음이 더 커져서 행동을 방해하기 전에 그대를 묶어 놓고 있는 것들로부터 멀어지라. 나무와 물에게 그대가 필요하게 하라.’(투서의 ‘좋은 농부가 되는 오백가지 방법’ 중)

그럴 수 있을까. 주식시세표와 인터넷과 출퇴근 러시아워와 저 멀리 손에 잡히지도 않는 정상을 향한 쉼없는 출세경쟁의 콘베이어벨트로부터 스스로 내려설 수 있을까.

책의 저자인 헬렌(1904∼1995)과 스코트(1883∼1983) 니어링 부부가 1932년 뉴욕을 떠나 버몬트의 산간으로 삶터를 옮길 때의 질문도 오늘의 도시 지식인들 내면의 갈등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니어링 부부는 ‘마음 속 깊이 불만스럽게 여기는 이 삶의 환경을 죽을 때까지 참고 견디는 대신 다른 삶’을 선택했다. 이 책은 버몬트 산간 마을에 첫 발을 내딛은 뒤의 20년간을 정리한 기록. 도시의 삶으로부터 옮겨오고자 하는 ‘후배’들을 위한 체험적인 지침서인 동시에 니어링부부의 삶의 궤적을 밝힌 고백록이다. 원제는 ‘Living the Good Life’.

뉴욕의 부유한 사업가 집안에서 태어나 바이올린을 공부했던 헬렌과 역시 펜실베이니어 재력가의 아들로 태어나 펜실베이니어대학 교수를 지냈던 스코트. 다른 사람보다 훨씬 적은 노력으로 평생을 우아하고 부유한 도시인으로 살 수도 있었던 이들은 그러나 사람조차 상품적 가치로 측정하는 자본주의 경제와 전쟁을 한결같은 목소리로 거부한 당대의 ‘반(反)사회적 인물’이었다. 그들이 진정으로 추구한 것은 허공 중에 세워진 이념이 아니라 존중되는 삶이었다.

‘우리는 땀 흘려 일해서 먹고 살고자 했다. 잉여가 생겨 착취하는 일 없이 필요한 만큼만 이루어지는 경제를 원했다. 미친 듯이 서두르고 속도를 내는 것에서 벗어나 평온한 속도로 나아가고 싶었다. 물음을 던지고 곰곰이 생각하고 깊이 들여다볼 시간이 필요했다.’

20년 동안 저자들은 스스로의 손으로 집을 지었고 버려진 땅을 거두어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을만큼의 농산물을 거두었으며 자신들의 임금이 나올만큼 메이플시럽을 만드는 작은 사업을 꾸렸다. 그들에게 없는 것은 전화기와 텔레비전이었지만 그들이 얻은 것은 20년간 단한번도 의사를 찾지 않을만큼의 건강이었다. 1년의 여섯달만을 먹고 사는 일에 바치고 나머지 여섯달은 연구 여행 글쓰기 대화 교육을 위해 쓸 수 있는 여유도 얻었다.

때때로 고뇌하는 도시인들은 이 부부에게 “왜 시끄럽고 더럽고 복잡한 대도시 한복판에 살면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불행과 고뇌를 나누지 않는가?” 라고 물었다. 그들의 답은 이런 것이었다.

“우리가 시골로 들어온 것은 삶으로부터 달아나기를 꿈꾸어서가 아니며 삶에 더 열중할 수 있기를 바란 때문이다. 의무로부터의 도피가 아니라 더 가치있는 의무를 찾고자 한 것이다.… 삶은 우리 모두가 몸 바쳐서 벌여 나가는 사업과 같은 것이다.”

<정은령기자>ry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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