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관료 '집단利己'가 판을 치면

  • 입력 2000년 4월 21일 20시 09분


관세청이 1200여명의 소속 공무원들에게 관세사 자격증을 주기 위해 국회에 로비를 벌여 이를 관철시켰다는 보도를 접하면서 한심하고 암담하다는 생각을 금할 수 없다. 작년말 정부 규제개혁위원회가 개혁 차원에서 관세청 경력공무원들에게 관세사 자격을 자동 부여하는 제도를 폐지키로 한 것을 입법과정에서 교묘하게 뒤집은 것이다. 이는 퇴직후 ‘밥그릇’ 확보를 위한 해당 공무원집단의 원색적 이기주의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는 또 잠재적 민간경쟁자들의 밥그릇을 빼앗는 행위다.

재정경제부 금융감독위원회 등이 금융기관 구조조정에 개입하면서 낙하산 투하하듯이 자기네 사람들을 앉히는 행태도 비슷하다. 금감위 등은 관련 금융기관에 대해서는 ‘산하단체에 사람 심지 말라’고 호통치면서 자기네는 그런 짓을 한다. 오늘의 현역도 언젠가는 퇴역이 될테니까 집단적 이익분배체제라고나 할까. 그래서 ‘정부내 금융마피아집단’이라는 소리가 사라지지 않는다. ‘황제’가 재벌에만 있는 게 아니다.

개인이나 집단이나 이기심을 자제하기는 쉽지 않다. 각계 각층 각인의 자기이익 추구는 경제 사회적 활력의 동인(動因)이기도 하다. 그것이 정당하게 ‘내 몫’을 확보하려는 것이라면 누구도 돌을 던질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만인이 오로지 자기네만의 이익을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면 세상이 정글처럼 변해버릴 우려가 있다. 국가 사회 공동체가 온통 그런 지경에 이르면 그 나라와 국민은 함께 불행해지기 쉽다. 그래서 이를 막기 위해 법 제도를 비롯한 사회적 이해조정의 시스템이 가동되고 지속적 보완도 필요하다.

갈등조정의 시스템을 주도적으로 만들고 운용하며 때로는 법적 강제력과 제재권을 행사하는 존재가 넓은 의미의 정부다. 정부가 사회 각 부문의 다양한 이해 갈등을 제대로 조정할 수 있기 위해서는 법제도가 합리적이어야 할 뿐만 아니라 ‘정부는 공정하다’는 국민적 신뢰를 이끌어내야 한다.

정부가 공정하기는커녕 스스로 집단이기주의에 빠져 내 몫 챙기기에 급급하다면 그 자체에 문제가 있음은 말할 것도 없고 그것이 국민 각계에 미치는 악영향은 민간의 집단이기적 행동보다 훨씬 클 수밖에 없다. ‘자기들 해먹을 건 다 해먹으면서 우리한테는 자제하라니’라는 냉소적 반발을 키우기 십상이다. 최근 사회 일각에서 ‘법 안지키기’를 서슴지 않는 것도 입법 행정 사법의 주체들이 보여온 일그러진 집단이기적 행태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

정부의 집단이기주의와 도덕적 해이를 방치하고선 나라를 바로 이끌기 어렵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