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타임스/Living]얇은 커튼 유행…사생활을 걷어낸다

  • 입력 2000년 4월 16일 19시 29분


지나 타란티노(38)의 방에는 얇은 커튼이 달려 있다. 그러나 그녀와 그녀의 남편은 이 커튼을 닫은 적이 한 번도 없다. 두 사람의 이웃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은 매일 아침 알몸으로 침대에서 일어나면서 아담과 이브처럼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고 커튼도 닫지 않는다. 제품 디자이너인 타란티노는 비록 자기 방에서 이웃의 침실이 훤히 들여다보이기는 하지만 자신과 이웃들 사이에는 진정한 익명성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그녀는 “이웃들과 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친 적이 한 번도 없다”면서 “옷을 입고 있는 그들을 내가 알아볼 수 있을지도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사실 이런 현상은 타란티노의 동네에서만 일어나고 있는 것이 아니다. 햇빛을 통과시킬 수 있는 얇은 커튼이 유행하면서 맨해튼의 고층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 이웃의 침실을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다. 이런 고층아파트 근처의 사무실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한낮에 이웃 아파트 주민들이 사랑을 나누는 모습을 보는 것은 이제 흔한 일이다. 사생활을 보호하기 위해 두꺼운 커튼을 드리우던 전통이 사라져가고 있는 것이다.

실내 장식가인 토머스 제인은 이것이 사생활에 대한 개념의 변화와 관련된 현상이라고 보고 있다. 그는 “사람들은 이제 옛날처럼 은밀한 사생활을 고집하지 않는다”면서 “그들은 거리에서 음식을 먹고, 언제 어디서나 휴대전화로 이야기를 나눈다”고 말했다. 유명한 사진가들의 은밀한 내면을 보여준 책인 ‘훔쳐보기’의 편집자 찰스 멜처는 “우리는 즐거운 관음증 환자가 되었다”면서 “TV와 인터넷을 통해 방영되는 노골적인 영상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우리의 눈은 20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던 광경들에 익숙해졌다”고 말했다.

얇은 커튼의 판매량은 현재 매년 5%의 비율로 늘어나고 있다. 커튼 판매 회사인 CHF 인더스트리스의 프랭크 폴리 사장은 커튼에 쓰이는 얇은 천이 도매 시장의 90%를 차지하고 있다고 추정한다. 이는 10년 전에 비해 50%나 늘어난 것이다.

지난주에 ABC 카펫&홈에 들른 주부 손드라 스미스(37)는 “내 집에 커튼을 설치할 곳은 샤워실밖에 없다”면서 “우리 이웃에도 창문에 커튼을 단 집이 하나도 없다”고 말했다. 뉴욕에서 활동하고 있는 디자이너 로라 본은 “사람들은 빛과 산뜻한 공간을 포기하는 대신 차라리 사생활을 포기한다”고 말했다.

사실 이웃들의 시선으로부터 집안을 가리기 위해 예전처럼 두꺼운 커튼을 설치할 생각을 했던 사람들도 실제로 커튼 샘플을 보고 난 후에는 마음을 바꾸는 경우가 많다. 주부인 리 엡스타인은 최근 남편과 함께 전통적인 커튼 샘플을 살펴본 후 “커튼에 드는 수천 달러의 돈을 카펫이나 골동품을 사는 데 쓰는 편이 낫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두꺼운 무명 커튼을 보고 완전히 질려버렸기 때문이었다. 얇은 커튼이 인기를 끄는 데는 관리하기가 편하다는 점도 한몫을 하고 있다. 밤에 부업으로 록 밴드에서 드럼을 연주하는 회계사 낸시 폴스타인(38)은 “너무 바빠서 커튼에 신경을 쓸 수가 없다”면서 “관리하는 데 손이 많이 가지 않는 것이 내게는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http://www.nytimes.com/library/home.041300drape.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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