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부즈맨 칼럼]임상원/필요한 '정치적 판단' 아껴 아쉬워

  • 입력 2000년 4월 16일 19시 01분


마오쩌둥은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고 했다. 그러나 권력은 정치를 통해서도 나온다. 지난 한 달여 동안 우리는 권력을 창출하기 위한 총선이라는 정치적 행사를 했다. 각 정당은 ‘우리’와 ‘그들’을 나눈 후 서로 한치의 양보도 없이 대결하면서 치열하게 투쟁했다. 그 과정은 토론과 합의도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결단과 투쟁이었다. 이런 의미에서 정치란 역시 투쟁이고 마오쩌둥의 말은 절반은 옳다. 그런데 우리 언론은 정치를 어떻게 다루고 있는가.

역사를 보면 우리신문은 정치신문이었다. 전통적으로 독자들은 정치기사에 따라 신문을 평가했다. 그러나 요즘 신문에는 정치가 없을 뿐만 아니라 정치가 투쟁이라는 정치의 진짜 얼굴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정치는 쇼나 축구경기 정도로 희화되고 있다. 최근 한국의 신문은 섹션화를 통해 급속도로 전문화의 길을 걷고 있다. 그러나 유독 정치면은 상대적으로 축소되면서 정치적 사건은 경제 문제로 해석되고 처리되는 경향이 있다. 고유한 정치적 사건은 없고 모두가 경제이고 돈 문제로 환원된다. 총선 결과나 남북정상회담이 주가지수 등 주로 경제의 틀 속에서 기사화되는 현실이 이를 말해 준다.

신문에서 정치가 복원될 필요가 있다. 정치에 대한 관심, 정치적 숙고의 결핍은 민주주의를 위해 위험하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경제로 환원되는 속에서는 민주주의는 시들게 된다. 정치가 우리의 삶에서 소중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런 면에서 우리 신문의 정치로의 회귀를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

동아일보는 전통적으로 정치면에서 여타 신문들과 구별되는 길을 걸어왔다. 다시 말하면 한국의 대표적인 권위지라는 동아일보의 이름은 상당 부분 그의 정치성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이번 총선 및 남북정상회담 보도에서 보인 동아일보의 주체성 집중력 전문성은 높이 평가된다. 역시 동아일보는 정치기사에 강하다. 그러나 아쉬운 것이 없는 것은 아니다.

14일자 A1면의 큰 제목은 ‘한나라 133석 예상 1당 확보’였다. 그리고 작은 제목 가운데 ‘민주당 수도권서 약진 모두 115석 차지’가 있다. 총선은 여야간 싸움이었다. 그렇다면 승자가 있고 패자가 있다. 그러나 제목이나 기사 내용을 읽어보면 그와 같은 정치적 판단은 독자가 하라는 식이다. 소위 신문의 중립성이란 깃발 뒤로 정치적 판단을 숨기는, 아니면 피하는 것처럼 보인다. 두루뭉실하다. 이번 선거결과에 대한 로이터나 AP 통신의 기사는 보다 확실하다.

또 하나 A1면에 박주선 당선자 사진을 ‘무소속 돌풍’이라는 설명과 함께 크게 실었다. 과연 ‘무소속 돌풍’인가. 과장으로 읽힌다. 왜냐하면 박 당선자는 진정한 무소속이 아니기 때문이다. 신문의 정치적 판단의 부재 현상이 여기서도 읽힌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봐서 동아일보는 타지와 비교할 때 훨씬 우수하다. 이번 총선에서 신문이 무엇이었는가 하는 문제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정치성 회복의 문제도 함께 말이다.

임상원(고려대교수·언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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