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순덕/'하고 싶은 것'과 '갖고 싶은 것'

  • 입력 2000년 4월 14일 19시 42분


단칸방에서 신접살림을 시작한 새댁이 있었다. 방 2개짜리 내 집을 갖는 것이 소원이었다. 반찬값 아끼며 허리띠 졸라매서 드디어 집을 장만했다.

이번에는 거실 있는 집에서 우아하게 커피를 마실 수 있다면 더 이상 원이 없을 것 같았다. 어서어서 돈 모아서 집 늘리려고 도배 한번 하지 않고 살다가 방 2개에 거실 하나 있는 아파트로 옮겼다. 그랬더니 바로 다음날부터 애들 방 하나씩 주게 30평대로 늘려가고 싶어졌다.

그런데 또 이사를 하고 나니 약효는 한달을 넘지 않았다. 40평대는 돼야 남부럽지 않을 것 아닌가…. 그러다 보니 벌써 40대 중반, 이젠 아들 장가들일 집값을 모아야할 시기였다. 더 큰 집 가지려고 평생 하고 싶은 것 하나 못하고 죽지, 싶더라며 그 여자는 한숨지었다.

이것만 갖고 나면 더 이상 욕망도 없으리라 생각했는데 그것을 쥐는 순간 욕망의 대상은 저만큼 물러나고 또 다른 갈증이 생겨난다는 건 정신분석학자들이 일찍이 발견해낸 삶의 법칙이다. 그래도 자신이 뭘 갖고 싶은지는 쉽게 알 수나 있다. 하고 싶은 게 뭔지도 모르면서 세상이 정해놓은 기준에 따라 사는 이가 훨씬 많다.

명문대학을 나와 남들이 다 좋다고 말하는 회사에서 대우받고 일하는 한 직장인이 “이 일이 내게 맞는 건지 모르겠다”고 털어놓은 적이 있다.

“그럼 무슨 일을 하고 싶은데”라고 묻자 그는 모르겠다고 했다. 어려서부터 공부는 무조건 잘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성적좋은 모범생에게는 가야할 길이 대체로 정해져 있었다. 좋은 대학, 좋은 직장, 좋은 배우자…. 다른 길이 있다고는 생각해본 적조차 없었기 때문에 곧게 뻗은 아스팔트 위를 달려왔을 뿐이라고 했다. 그는 서른살이었다.

이에 비해 머리는 노랗고 빨개도 밝고 야무져 보이는 아이들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분명하게 알고 있는 경우가 많아 대조적이다. “공부는 싫다. 노는 건 좋다. 그러면 파티기획자가 되자” “춤을 출 때가 제일 좋다. 백댄서가 되겠다” 등. 그런데 운나쁘면 남들 기준에 맞춰사는 부모들 손에 발목을 잡혀버린다.

벤처다 뭐다 해서 움직이는 사람이 많은 시절이다. 저 좋은 데로 떠나는 이들을 보는 남은 자들은 알 수 없는 박탈감에 빠진다. 나도 다른 일을 해볼까. 그런데 뭘 해야 하지?

과거 처세술 책이 ‘하고싶은 것 꾹 참으며 좋은 직장에서 승진하기’를 다루고 있다면 요즘 나오는 책들은 “자기가 하고싶은 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고 과감하게 저지르면 성공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어 관심을 끈다. 이때 중요한 건 ‘하고 싶은 것’과 ‘갖고 싶은 것’을 혼동하지 않는 일이다.

돈 명예 파워 여자(남자)…. 갖고 싶은 건 손에 쥔 순간 빛이 바래고 또 다른 욕망에 허덕이게 되지만 누가 뭐라든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은 행복하다고 했다. 이제 빛나는 금배지를 손에 쥔 선량들도 그들이 과연 정치를 ‘하고’ 싶었던 것인지, 아니면 권력을 ‘갖고’ 싶었던 것인지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금배지를 얻고도 또다른 것을 갖겠다고 갈증을 느끼지 않게.

김순덕<생활부 차장>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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