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농구]강동희 "떠나련다"

  • 입력 2000년 4월 13일 19시 42분


"이제는 기아를 떠날 때가 됐다."

'코트의 마술사' 강동희(34·기아 엔터프라이즈)는 '새 둥지'를 마련할 수 있을까.

90년 2월 중앙대를 졸업한 뒤 10년 넘게 기아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강동희. 당시 현대로부터 3억원 이상의 스카우트비를 제시받았지만 대학 선배인 한기범 김유택 허재 등이 있는 기아에서 뛰고 싶어 거액을 포기했다. 의리를 선택한 그는 '강산이 한 번 변한다'는 긴 세월 속에서 국내 최고의 포인트 가드로 이름을 날리며 팀을 이끌었다. 프로 원년리그 우승 주역으로 최우수선수(MVP) 타이틀을 차지했고 얼마 전 끝난 99∼2000시즌에서도 통산 3번째 어시스트왕에 등극하며 녹슬지 않은 기량을 떨쳤다.

그런 강동희가 정들었던 붉은색 기아 유니폼과의 작별을 선언하고 나섰다.

그의 갑작스러운 결심은 우선 최근 구단이 비밀리에 세대 교체를 이유로 자신을 트레이드하기 위해 다른 팀과 접촉했다는 사실을 확인했기 때문. '영원한 기아맨'을 자처했던 그로서는 '물밑 작업' 자체가 그 성사 여부를 떠나 충격이었다. 또 명문 기아의 주역이었던 '허-동-택 트리오' 가운데 허재가 삼보로 이적했고 김유택마저 은퇴해 홀로 남았다는 공허함도 컸다. 게다가 지난해 현대가 기아를 인수하면서 예전같은 소속감과 열정은 식을 수밖에 없었다.

강동희는 13일 "기아에서 마음이 떠난 게 솔직한 심정"이라며 "구단에서 정해주는 대로 옮길 바에는 은퇴할 생각이며 내가 원하는 팀에서 유종의 미를 거둔 뒤 코트를 떠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이날 용인 기아 숙소에서 가진 구단 고위층과 선수단의 상견례에도 불참,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으며 대신 오후에 모처럼 송도고 시절 은사인 전규삼옹을 찾아가 답답한 심정을 털어놓기도 했다.

반면 박수교 기아 감독은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다"며 "구단 고위층으로부터 강동희를 트레이드 절대 불가 선수로 분류하라는 지시까지 있었다"고 밝혔다.

강동희는 최근 4, 5개 구단으로부터 '러브콜'을 받았으며 특히 가드진이 취약한 LG 세이커스, 동양 오리온스, 삼성 썬더스 등은 구체적인 카드까지 제시하며 그의 영입에 팔을 걷어붙인 상황.

이번 트레이드 파문의 '칼자루'는 물론 기아 구단이 잡고 있다. 기아는 뒤늦게 사태 수습에 나섰지만 '기아와의 인연은 끝났다'는 강동희의 마음을 붙잡을 수 있을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듯하다.

<김종석기자>kjs012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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