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득헌의 스포츠세상]TV스포츠의 즐거움

  • 입력 2000년 4월 10일 20시 32분


국내 골프라이터의 태두인 최영정(崔永定)씨의 오래 전 칼럼에 이런 게 있다.

"구옥희선수가 우승한 경기를 해설했는데 꼭 해야할 말과 밝히고 넘어가야 할 말만 하려고 애썼다고 자부한다. 숨쉴 겨를 없이 말을 해야 좋은 중계와 해설로 착각되는 풍토에서 말을 적게, 필요한 말만 하려 한 것은 이단일지도 모르겠지만 대자연에서 외롭게 싸우는 골프에서는 정통인 것이다. "

미국 TV방송국이 골프해설자에게 가장 먼저 주문한 게 당신이 무슨 말을 하는가가 중요하지 않다. 무슨 말을 하지 않는가가 더 중요하다 는 말이었음을 염두에 두고 해설에 임했다는 것이다.

폴 코미스키 박사의 연구도 참고할 만 하다.

" 아이스하키경기 비디오 테이프를 여러 개 살펴보았다. 일단 정상적인 플레이와 격렬한 플레이로 구분했다. 그리고 체계적으로 장면들을 관찰했다. 그 결과 우리가 처음 과격하다고 생각한 대목에선 실제로 난폭한 행위는 없었음을 발견했다. 오히려 정상적이라고 느꼈던 대목에서 거친 행동들이 있었다. 처음 그렇게 분류했던 것은 중계자와 해설자가 그러한 인식을 심어주었기 때문이다."

스포츠의 경험을 전달하는 데는 TV만한 위력을 가진 매체는 아직 없다. 경기장에서는 놓칠 수 있는 순간의 장면을 느린 화면 또는 정지 화면으로 다시 볼 수도 있고, 그것도 다양한 각도에서 잡은 화면을 여러 번 볼 수 있다는 점은 TV스포츠만의 매력이다. 관중석에서 있을 수도 있는 주위의 불쾌한 행동을 의식하지 않아도 되며, 자막이나 통계를 보며 나름대로 분석을 해 볼 수 있는 것도 TV시청의 이점이다. 더구나 편안한 자세로 먹고 마시며 클로즈업된 선수의 표정이나 말소리까지 즐길 수 있지 않은가.

그래서 엘리스 캐시모어는 TV스포츠를 맥스포츠(McSports)라고 말했을 것이다. TV스포츠는 매우 빠르고 친절하게 포장까지 해 판매되는 햄버거처럼 시청자에게, 특히 젊은이에게, 만족감을 준다는 게 그의 지적이다. 나도 동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 TV스포츠는 비판의 도마 위에 오르는 단골 메뉴중의 하나였다. 현장의 감흥을 차선책으로나마 느끼려는 관중(시청자)에게 방해가 되는, 때로는 사고를 어지럽게 하는 '군말의 잔치' '비논리적 발언'이 적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올해도 나는 현장에서보다는 TV로 스포츠를 만나는 경우가 많을 터인데 관전보다는 시청하고 싶다. "모두가 알고 있는 것은 말하지 않는다. 정확하지 않은 것은 말하지 않는다. 추측하지 않는다" 라는 해설의 금언을 실천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래도 나는 TV스포츠에 대한 기대수준을 낮추지는 않겠다.

<논설위원·이학(체육학)박사>dhy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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