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맛나는 세상]야학 자원봉사 한종선 순경-송용준 경장

  • 입력 2000년 4월 7일 20시 03분


오후 8시가 조금 넘은 시각. 수학 수업이 끝난 후 자리 배치를 다시 하는 일로 교실이 시끌벅적하다. 10평 남짓한 작은 교실에는 엷은 피로와 약간의 들뜸이 뒤섞여 있었다.

서울 중랑구 신내동 신내 10단지 아파트 내 서울시립대 종합사회복지관 지하 1층 ‘내일을 여는 교실’. 수학문제가 가득 적힌 칠판 앞에서 쏟아지는 아이들의 질문을 듣느라 정신이 없는 수학 선생님은 뜻밖에도 정복차림의 현역 경찰관이다. 집안형편상 학원비가 부담스러운 중학생들을 위해 무료로 영어와 수학 보충강의를 해주는 이 교실에서 선생님은 딱 두 명으로 모두 자원봉사에 나선 현직 경찰관이다.

▼무료로 영어-수학 가르쳐▼

서울 중랑경찰서 신내2파출소에서 근무하는 한종선(韓鍾善·28)순경이 1월부터 수학을 맡았고, 같은 경찰서 조사계에 근무하는 송용준(宋容俊·29)경장은 3월부터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

지난해 1월부터 파출소에서 근무하던 한순경은 12월 신내10단지를 순찰하다 우연히 사회복지관에서 일하는 한 사람을 만나 ‘내일을 여는 교실’이 교사가 없어 운영을 못할 처지라는 말을 들었다. 그는 사심 없이 아이들과 만나며 도움을 주는 일에 마음이 끌렸다. 그는 보험회사를 다니면서 사람들이 돈 몇 푼에 양심을 버리고 편법을 쓰는 것에 질려 경찰관이 됐다가 이번에는 온갖 종류의 범죄자들을 대하는 일상에 조금씩 지쳐가던 중이었다. 서점에서 중3수학 참고서를 사다 나름대로 사전 공부를 한 뒤 사회복지관에 야학교사를 자청했다.

송경장은 지난달 동료경찰로부터 한순경의 얘기를 접하면서 아직 영어교사가 없다는 말에 한순경에게 전화를 걸었다. 송경장은 집안 사정이 어려워 대학 다니는 내내 영어학원 강사를 하며 돈을 벌었다. 이제는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반대로 여유가 없어 학원에 못 가는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일이 꼭 하고 싶었다.

송경장은 “쉴 수 있는 시간을 쪼개 야학교사를 하는 일이 힘들지 않느냐는 말은 정말 모르는 소리”라며 오히려 삶에 힘을 불어넣어 주는 아이들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하루종일 사기나 간통혐의로 불려온 피의자를 심문하면서 늘 상대를 의심하는 일에 익숙해지다보면 조금씩 마음이 삭막해져가죠. 그런 저희들에게 순수한 아이들을 가르치며 꾸밈없는 이야기를 나누는 일만큼 세상에 대한 희망을 깨우쳐주는 일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일주일 두번씩 자원봉사▼

정해진 수업은 각각 일주일에 두 번씩, 오후 7시부터 9시까지지만 두 경찰 선생님은 수업이 끝난 후에도 학생들과 나눌 이야기가 많다. 영화보다 더 생생한 경찰 업무에 대한 이야기부터 이성친구에 대한 고민까지 이야기가 척척 통한다.

선생님들에 대한 촌평을 부탁 받은 강해미양(15·영란여중 3년)은 “경찰관이 선생님이라는 말에 은근히 딱딱하고 무섭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너무 유머감각이 넘치는 분들이라 학교수업시간 보다 재미있다”며 “우리 총각선생님들 빨리 좀 장가 보내달라”고 웃음을 지었다.

<김승진기자> sarafi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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