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식의 과학생각]돼지고기가 생각을 한다고?

  • 입력 2000년 4월 5일 19시 54분


제3의 컴퓨터 물결이 밀려온다. 메인프레임, 퍼스널 컴퓨터에 이어 유비컴(ubiquitous computing)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유비컴은 말 그대로 컴퓨터가 어디에나 퍼져 있다는 뜻.

유비컴 시대에는 실로 천을 짜듯 컴퓨터가 의식주의 모든 수단에 스며들기 때문에 컴퓨터가 도처에 존재하면서 동시에 보이지 않게 된다. 유비컴은 한마디로 컴퓨터를 우리 눈앞에서 사라지게 하는 기술이다.

유비컴의 성패는 신발 옷감 손목시계 등 생활필수품을 비롯해서 커피 잔이나 돼지고기 조각에까지 장착이 가능할 정도로 작은, 태그(꼬리표)처럼 생긴 컴퓨터의 개발 여부에 달려 있다. 유비컴 개념의 산실인 매사추세츠 공대의 ‘생각하는 사물(TTT)’ 연구진은 이미 옷깃에 다는 배지 크기의 컴퓨터를 개발했다.

▼'유비컴'시대 머지않아▼

유비컴 시대가 되면 주변의 모든 물건이 지능을 갖는다. 영리한 물건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사람의 도움 없이 임무를 수행한다. 가령 돼지고기에 숨겨둔 컴퓨터 배지는 오븐 안에서 스스로 온도를 조절해 고기가 알맞게 익도록 한다.

유비컴의 세계에서는 지능을 가진 물건과 사람 사이의 정보 교환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따라서 사람은 컴퓨터가 내장된 옷을 입게 된다. 이른바 입는 컴퓨터가 필요한 것이다. 사람이 착용한 시계, 혁대 장식, 운동화 따위에 컴퓨터가 장착되면 주변 환경에 설치된 컴퓨터와 통신하여 일상생활을 더욱 편리하게 해줄 것으로 기대된다. 예컨대 손목시계에 내장된 컴퓨터의 고유 정보를 사용하여 출입문 캐비닛 서랍을 자동으로 여닫을 수 있다.

유비컴은 사람과 물건 사이뿐만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의사소통을 원활하게 해줄 것 같다. 가령 입는 컴퓨터를 착용한 사람끼리 악수하면 손을 통해 정보가 건네지므로 피차간에 직장이름 사무실 전화번호 취미 또는 특기 따위를 즉시 교환할 수 있다.

매사추세츠 공대에서는 사람 사이의 상호작용을 활성화하는 몇 가지 컴퓨터 배지를 개발하고 있다. 배지 기술은 학술회의장이나 술집 등 사람이 많이 모이는 장소에서 짧은 시간에 마음에 드는 상대방을 찾아내지 못해 욕구불만인 현대인에게 크게 도움이 될 전망이다. 여러 사람이 모인 곳에서 낯선 사람에게 말을 건네기란 여간 어렵고 쑥스러운 일이 아니다. 더욱이 제한된 시간에 처음 만난 사람들 중에서 생각이 같거나 배짱이 맞는 상대를 골라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뛰어난 독심술이나 사교술을 가진 사람이라면 몰라도 대부분은 각종 모임에서 평소 알고 지내던 친지들과 담소를 나누다가 자리를 뜬 경험이 적지 않을 터이다. 이러한 사람들에게 배지는 술집에서 즉석 애인을 구하거나 연회장에서 사업 동반자를 만나는 기회를 증대시켜 준다. 배지에는 취미와 관심사에서부터 특정 문제에 대한 개인적 견해까지 각종 정보를 집어넣을 수 있으므로 동일한 정보를 가진 배지의 소유자끼리 금방 상대방을 알아볼 수 있다.

▼'사랑단추'日선 벌써 상품화▼

배지 기술은 술집이나 회의장 등 밀폐된 공간 못지 않게 길거리에서 이미 쓰임새가 입증되었다. 대표적 성공 사례는 일본 제품인 러브게티(Lovegety). 발매 후 6개월만에 100만개의 판매를 기록할 만큼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주요 고객은 거리에서 이성 친구를 찾아 헤매는 10대들이다. 러브게티는 사랑 춤 채팅 장난 음주 영화감상 등 6개 항목에 대해 의향을 떠보는 무선 송수신 장치다.

반경 10m 안에서 뜻이 통하는 상대가 나타나면 러브게티에 초록불이 켜진다. 대담한 사용자들은 주위 사람이 들을 수 있도록 삑 소리가 나게 해둔다. 그래서 별명은 사랑 삐삐. 러브게티와 같은 ‘사랑 단추’는 황금시장을 약속할 뿐더러 사회적으로 적지 않은 파장을 불러일으킬 성싶다. 무엇이든 새 것이라면 재빨리 받아들이는 우리나라에서는 더 말해 무엇하랴.

우선 새 친구와 연인을 갈구하는 성인들이 사랑 단추를 외면할 리 만무하다. 휴대전화 보급 속도에서 본 바와 같이 너도나도 구입할 테고.

전문가들은 사랑 단추가 인터넷처럼 거대한 사회 변화를 몰고 올 잠재력이 크다고 말한다.

이인식(과학문화연구소장)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