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읽기]KBS 주말드라마 '꼭지'…느린전개로 인물살리기

  • 입력 2000년 4월 3일 19시 22분


KBS 2TV가 2주 전부터 방영해온 주말드라마 ‘꼭지’(토일 오후7·50)가 최근의 자사 드라마 중 오랜만에 KBS의 장기인 긴 호흡의 시대극에 충실하며 인기몰이 가능성을 보이고 있다. 전작(前作)인 ‘사랑하세요?’가 최수종 김민종 이승연 등 스타급 연기자를 갖고도 트렌디 드라마와 멜로의 포맷에 시대극의 정서를 어정쩡하게 섞다가 별 반응을 이끌어내지 못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제까지 4회가 방송된 ‘꼭지’를 관통하는 주조는 ‘느림의 미학’. 인기절정의 MBC ‘허준’처럼 긴 편수의 사극도 미니시리즈를 연상케 하는 빠른 전개가 유행인 요즘, ‘꼭지’는 1975년 경기도 평택이라는 정지된 시공 속의 인물군상 하나하나에 카메라를 충분히 들이댄다.

그러다 보니 다른 드라마에 비해서 별 특이할 것 없는 극 중 캐릭터들도 독특한 흡인력을 가지며 고루 살아나고 있다. 극을 끌어가는 삼형제인 준태(조민기 분) 현태(이종원) 명태(원빈)는 모두 평범한 인물들. 그러나 준태는 조신하며선도 장남 노릇에 충실하려 하고, 현태는 차갑지만 출세욕으로 뭉쳐 있으며, 명태는 천방지축 날뛰지만 어머니만큼은 끔직이 위하는 등 각자 뚜렷한 선을 살려내고 있다. 이전까지 세련된 외모에 비해 연기력을 인정받지 못한 원빈이 ‘형’들에 버금가는 주목을 받고 있는 것도 이런 카메라의 고른 ‘3분할’의 영향이 크다.

나머지 인물들도 아직까지는 주연들에게 묻히지 않고 ‘잘 보인다’. 이들의 아버지인 송만호(박근형)는 인생의 모진 풍파를 겪은 흔적이 역력하고, 주인공인 현태의 애인이자 신분 차이 때문에 갈등 구도의 핵심이 될 지연(박상아)도 이미 4회 동안 나름의 ‘파이’를 가져갔다.

그런데 한 가지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것은 드라마 제목이자 극 중 화자(話者)이며 관찰자로 설정된 꼭지의 존재가 매우 미미하다는 것. 벤치마킹의 대상이었을 지난해 히트작 SBS ‘은실이’에서 은실이가 화자인 동시에 극의 한 켠을 확실히 잡고 있던 것과는 달리, 꼭지는 단지 ‘얼굴 마담’에 불과하다.

제목을 ‘꼭지’로 정한만큼 그에 합당한 배역을 설정하는 것이 드라마 구도를 보다 확실히 잡는데 도움이 될 것 같다.

<이승헌기자> 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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