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즈업]獨전총리 헬무트 콜 '우울한 칠순잔치'

  • 입력 2000년 4월 3일 19시 22분


독일 통일의 주역 헬무트 콜 전 총리가 3일 우울한 칠순을 맞았다.

당초 1000명이 넘는 손님을 초청해 성대하게 치르려 했던 그의 생일 잔치는 가족행사로 축소됐다. 독일언론은 70회 생일이지만 쓸쓸하게 집을 지키고 있는 그를 양로원에서 생일을 맞아야 하는 불우노인에 빗대었다.

1947년 정치에 입문한 콜은 73년 기민당 총재가 된 뒤 지난 27년간 총재와 총리직을 역임하며 독일통일과 유럽통합의 위업을 이룬 독일 정치의 거목으로 군림해왔다. 그러나 작년 11월 기민당 비자금 스캔들이 터지면서 그의 명성은 끝없이 추락해왔다.

최근에는 자신이 딸처럼 밀었던 안겔라 메르켈 차기 총재 지명자로부터 정계은퇴를 강요받는 처지가 됐다. ‘통일의 영웅’에서 불과 5개월만에 전형적인 비리정치인으로 운명이 바뀐 그에게 쓸쓸한 70회 생일은 가혹한 시련과도 같은 것.

17세 때 고등학생으로 나치에 의해 징집됐다가 독일이 패망한 뒤 500㎞가 넘는 길을 걸어 집으로 돌아가면서 황폐한 조국의 재건을 고민했다는 콜. 180㎏이 넘는 그의 몸집을 통일독일의 힘에 비유하곤 하던 독일언론들도 이제는 가장 탐욕스러운 구식 정치인의 상징처럼 묘사하고 있다.

독일 정치분석가들은 “정작 독일 국민은 그를 앞으로 어떤 인물로 기억하게 될 것인지 궁금하다”고 말하고 있다.

<백경학기자>stern10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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