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책]'큐레이터의 딜레마'/'관객을 위한 전시' 예 들어 설명

  • 입력 2000년 3월 31일 21시 17분


▼'큐레이터의 딜레마' 니콜라스 세로타 지음/조형교육 펴냄▼

19세기말 영국 내셔널 갤러리를 이끌었던 이스트레이크 관장이 제시한 작품전시의 원칙은 “미술관은 쇼윈도가 아니라 역사 교과서가 돼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관객을 교양인으로 교육시키고자 하는 이러한 계몽적 의지는 20세기 현대미술의 발흥과 함께 대다수 미술관에서 부정당한다. 특히 뉴욕의 현대미술관(MOMA), 구겐하임 등 부와 문화의 새로운 중심지로 떠오른 미국에서 전시의 원칙은 “큐레이터가 설명하려 하지 말고 관객 스스로 체험하게 하자”는 방임형으로 바뀐다.

이 책은 현대미술의 전시원칙이 이렇게 ‘해석’과 ‘경험’의 양 축 사이에서 변화되어 가는 역사적 궤적을 추적한다. 그것은 곧 20세기 미술의 성격을 드러내는 것이다. 왜냐하면 큐레이터들이 ‘경험’을 지지하게 된 큰 이유가 작가들이 단지 자신의 작품을 미술관에 넘겨주는 것이 아니라 직접 미술관의 물리적 공간에 간여하려고 하는 경향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브랑쿠지, 몬드리앙, 뒤샹, 보이스 등 현대미술의 대가들은 스스로 자신의 작품이 놓일 공간까지를 작품의 연장으로 삼아 새로운 미술관을 창조해냈다. 독일 다름슈타트의 헤센 도립미술관, 파리의 브랑쿠지 스튜디오, 미국 필라델피아 미술관의 뒤샹의 방 등은 그 구체적인 예다.

그러나 현재 영국 테이트 갤러리 관장이며 ‘미술관은 역사교과서가 돼야 한다’는 전통에서 자라난 저자는 ‘해석’에서 ‘경험’으로의 일방적인 변화만을 지지하지는 않는다. 어떤 전시실은 여전히 관람객이 금세기 미술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큐레이터가 미술사적 기획안을 갖고 고정시켜야 하며 다른 전시실은 계속 다른 전시물들로 변화를 줌으로써 관객이 ‘해석’과 ‘경험’의 이점을 동시에 취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짧은 분량이지만 세계 주요 미술관의 전시방침과 20세기 작가들의 제작관 변화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게 하는 정보서다. 원제는 ‘Experience or Inter-pretation’. 역자는 예술의 전당 미술관 큐레이터인 하계훈씨. 103쪽 6500원.

<정은령기자> ry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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