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전국구 '갈라먹기' 안된다

  • 입력 2000년 3월 20일 19시 32분


4월 총선을 앞둔 각 정당의 득표 각축이 달아오르고 있는 가운데 비례대표 의석 46자리를 놓고 어느 당의 누가 당선권에 드느냐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각 당은 후보등록 마감일인 29일까지는 비례대표 후보 명부도 선관위에 내야 한다. 그러나 각 정당의 인선 움직임을 살펴보면, 비례대표제도의 본래 취지나 원칙과는 빗나가고 있다. ‘얼굴마담’내세우기 혹은 지역구 낙천자 배려, 재정기여도 및 총재에 대한 충성도 평가로 흘러가는 양상이다.

우리가 보통 전국구라고 말하는 비례대표제는 원론적으로 다수대표제의 단점을 메우기 위한 보완책으로 설명되고 있다. 다수대표제가 그 ‘다수’에만 지나치게 유리한 결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다양한 이익을 대변하는 정당들이 그 정치적 실력에 걸맞게 의회에 대표를 낼 수 있는 기회를 보장하는 차원에서 고려된 것이다. 따라서 모든 계층의 국민 여론을 고루 국정에 반영하도록 하는 ‘정의로운’ 제도로 평가되기도 한다.

여기에 직능대표성까지를 담자는 것이 ‘전국구’제도의 기본 취지다. 직능대표제란 주지하는 바와 같이 지역민의 선거로 뽑힌 의원들로 구성되는 ‘지역대표’들의 의회만으로는 국민대표의 기능을 다할 수 없고 지역적 특수이익을 옹호하는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직능대표성’까지를 보완하자는 데서 출발한 제도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산업화 정보화로 이어지는 사회 경제적 구조의 급격한 분화(分化) 특화(特化) 현상도 의회에서 이런 직능적 보완을 피할 수 없게 만들었다.

이러한 취지와 원칙에 비추어 볼 때 우리나라 정당 안에서 지금 논의하고 있는 전국구 인선은 크게 빗나간 것이다. 다양한 직능적 목소리를 담기는커녕 ‘구태정치’의 연장선상에서 접근하는 인상을 주고 있다. 우선 직능성 전문성과는 거리가 먼 정치꾼들이 비교적 땀 안흘리고 국회에 들어가는 길을 찾아 전국구후보 상위순번을 희망하고 있고, 그 인선을 주도하고 있는 지도부에서도 정치적 고려에 급급하는 양상이다.

민주당의 경우 지역구에 나가지 못한 ‘충성파’낙천자들이, 한나라당에서도 직능 전문성과는 거리가 먼 이른바 중진급 인사들이, 자민련 민국당에서는 특별당비를 내는 재정기여자가 고려되고 있다는 보도다. 이런 식이라면 비례대표제를 둔 정신에도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정치개혁이나 국리민복에 하등의 도움도 되지 않는, 정치판의 그렇고 그런 나누어먹기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식으로 전국구의원이 확정된다면 유권자들의 심한 저항에 부닥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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