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崇山스님/"외국인들이 건립…한국불교 세계화 기지"

  • 입력 2000년 3월 19일 19시 59분


30여년에 걸쳐 한국 선불교의 세계화에 주력해온 화계사 조실 숭산(崇山·73)스님. 하버드대 대학원에 재학 중이던 엘리트 미국 청년을 부처님 앞에 무릎꿇게 해 현각(玄覺·36)이란 승려로 거듭나게 했던 ‘큰 스님’이다. 그를 따라 출가한 외국인 승려만도 50명이 넘는다.

숭산스님이 19일 충남 논산시 두마면 향한리 계룡산 자락에 국제선원 무상사(無上寺)를 연 것은 현각과 같이 최고수준의 학벌과 물질적 풍요에도 불구하고 진정한 자아와 행복을 찾지 못해 고뇌하는 수많은 이국의 젊은이들에게 한국 불교의 참진리를 가르쳐야겠다는 자비심의 발로였을 것이다.

조실로 주석하고 계신 서울 수유리 화계사 거처에 도착했을 때 스님은 소금물에 발을 담그고 계셨다. 승가의 전통에 따라 출가후 줄 곳 고무신을 고집해 온 데다 오랜 해외선교로 발품을 얼마나 팔았던지 늦도록 무좀에 시달리고 있는 탓이었다. 하지만 인터뷰 도중 걸려오는 국제전화를 능숙하게 응대하는 영어솜씨나 세련된 매너는 가히 ‘일류 외교사절’급 이다.

-국제선원 개원을 축하드립니다. 선원의 규모와 역할,그리고 운영방안이 궁금합니다.

“총부지가 4000평 정도로 이번에 첫 번째로 선원동을 열었습니다. 2층 건물로 136평 규모입니다. 깨달음을 얻기 위해 세계 각국에서 온 제자들을 이곳에서 훈련시킨 뒤 각자 자기 나라로 돌아가 한국 불교의 가르침을 전파하도록 할 계획입니다. 2002년 5월경까지 대웅전 대중선방 요사채 등을 차례로 완공해 세계 각국의 승려와 신도들이 한국의 전통적 수행방식에 따라 여름과 겨울 3개월씩 수행을 할 수 있도록 모든 시설과 프로그램을 마련할 계획입니다.”

-32개국 120여곳의 선원에서 수행중인 5만여명의 제자들이 이번 불사를 적극 후원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11억원의 공사비용 중 10억원을 외국의 신도들이 부담했지요. 선원의 소임도 모두 외국인 제자들에게 맡겼습니다. 한마디로 외국인들을 위해 한국불자들이 세운 시설이 아니라 외국인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세우고 운영해 나갈 ‘한국 불교의 세계 포교 전진기지’인 셈이지요.”

-제반 교육 여건이 좋은 대도시를 놔두고 계룡산 국사봉 자락에 터를 고르신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계룡산은 동학사 갑사 신원사 같은 유서깊은 사찰이 있는데다 경허 만공 등 한국의 위대한 선사들의 수행터입니다. 또 선원이 자리잡은 곳은 일찍이 무학대사께서 국사나 선사가 많이 나올 터라고 말씀하신 곳이기도 합니다.”

스님은 얼마전 ‘만행·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라는 출가 구도기로 일약 ‘유명인사’가 된 그의 제자 현각에게 당분간 계룡산 국제선원에만 머물면서 일체의 대외활동도 중지하라는 ‘금족’ ‘묵언’령을 내렸다. 조심스럽게 그 이유를 여쭤보았다.

-스님 한 분만을 의지해 머나먼 이국 땅에 와 3개월의 혹독한 동안거를 마친 현각스님을 그처럼 엄하게 다루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현각은 구도의 길에 있는 승려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는 아직 남을 가르칠 수 있는 자격을 갖추지 못했습니다. 더 많은 수행과 수련을 거쳐야 할 사람이 대중 앞에 함부로 몸을 드러내는 것은 수행에 큰 지장을 초래합니다. 그의 학벌과 깨달음은 아무런 관계가 없기 때문입니다. 현각도 저의 뜻을 잘 알고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겉으로는 엄격하지만 마음 저 깊숙한 곳에서 제자의 장래를 걱정하는 대선사 숭산의 깊은 속내가 느껴졌다. 지구를 돌고 돈 그의 법력이 화계사 뒷 산을 넘어 계룡산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오명철기자>osc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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