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몸이야기/얼굴]시대를 잘 만나면 "나도 미인"

  • 입력 2000년 3월 16일 19시 35분


‘높은 코에 볼록한 이마, 왕방울 같은 두 눈’.

요즘 기준으로 보면 서양적이면서 섹시한 얼굴일 수도 있겠지만 고대소설 박씨전(朴氏傳)에서는 ‘더이상 추할 수 없는’ 박색의 얼굴로 소개됐다.

그렇다면 조상들은 어떤 얼굴을 미인으로 쳤을까?

고대소설 ‘옥단춘전’‘구운몽’‘윤지경전’ 등에 나오는 미인은 10대 중반의 나이에 △반달형으로 가늘고 검은 눈썹 △깊고 젖은 가는 눈 △붉고 작은 통통한 입술 △적당히 둥글고 볼그스레한 뺨 △희고 고른 이가 △하얗고 고운 살빛과 색감(色感)으로 대비되는 얼굴이었다. 콧등은 가늘면서 길고 콧잔등은 낮았다. 쌍꺼풀이 없는 양 눈의 사이는 적당히 멀어야했다.

여기에 보조개가 살짝 패여 있으면 금상첨화였다. 보조개는 어원적으로 ‘볼(협·頰)의 조개(패·貝)’란 뜻. 볼우물이란 새뜻한 말로도 불린다.

의학적으로 보조개는 볼 가운데 진피(眞皮) 아래에 피하지방이 없어 진피와 근육이 붙은 ‘근육이상유착현상’일 뿐. 그러나 미인의 볼웃음은 숱한 남성들을 설레게 했다. 시와 노래의 단골 소재였으며 시인 김파도 발그스레한, 우물진 볼을 노래했다.

‘고운 손 포도를 따네요/별빛 눈 수줍게 내리깔고/볼우물에 띠운 빨간 꽃잎….’(‘포도넝쿨 아래서’ 중)

▼ 한국인의 얼굴이 변한다 ▼

미인관 뿐 아니라 실제 얼굴도 급속히 변하고 있다. 한국인의 전통적 얼굴은 동글 납작하고 속쌍꺼풀이 있으며 눈동자와 콧속을 따뜻하게 보온하기에 좋게 광대뼈가 높은 편인데 이는 우리 조상이 북쪽 추운지방에서 오랫동안 살았기 때문.

그러나 요즘엔 턱이 갸름해지고 광대뼈가 작아지는 추세. 딱딱한 음식 대신 부드럽고 연한 음식을 먹으면서 턱과 광대뼈의 발육이 더뎌지는 것이 원인이다.

요즘 젊은 엄마들은 아기를 머리뼈가 굳기 전에 엎드려 키우거나 옆으로 재워 키워 머리옆이 납작해지는 쪽으로 바뀌고 있다. 서양에선 중세에서 20세기초까지 아기의 얼굴을 납작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유럽의 풍속화들엔 머리뼈가 말랑말랑한 아기를 눕혀 널빤지로 내려누르는 ‘희한한 모정’이 담겨있기도.

▼ 얼굴의 구조와 성장 ▼

얼굴이란 낱말은 조선 중기까지 ‘모습, 틀’을 뜻하다가 의미가 축소돼 점차 ‘안면’만 가리키게 됐다. 얼굴은 4종 7개의 구멍에다 9종 15개의 뼈, 그리고 씹는 근육, 표정근육에 신경과 혈관 등으로 구성돼 있다.

얼굴 중 ‘눈 위의 얼굴’, 즉 넓고 납작한 이마는 사람에게만 있다. 이는 상대적으로 큰 뇌를 갖고 있기 때문이며 빙하시대 추위와 싸우면서 납작해졌다. 이마 양 끝에 있는 관자놀이는 영어로 ‘템플(temple)’인데 이는 ‘신전’을 뜻하기 보다는 시간을 뜻하는 라틴어 ‘템푸스(tempus)’에서 온 것.

머리 중 뇌와 두개(頭蓋)는 6세까지 성인의 90% 크기까지 자라지만 얼굴은 20세까지 서서히 자란다. 신생아의 얼굴은 두개 크기의 1/5이나 안면골이 세로로 늘어나면서 얼굴이 자라 어른이 되면 두개의 반 정도로 커진다.

▼ 얼굴의 색깔 ▼

낯색이 급격히 변하면 어떤 병이 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얼굴과 온몸이 갑자기 노랗게 변하는 황달은 간이 약해져 적혈구 속에 빌리루빈이라는 노란 색소가 쌓였기 때문. 그러나 컨디션이 좋은데 얼굴이 노랗게 변했다면 걱정할 필요는 없다. 이 경우 과일과 채소에 풍부한 카로틴이 혈액에 많은 카로틴증일 가능성이 높다.

사람의 피부색은 멜라닌색소에 따라 결정되는데 이 색소가 부족하면 하얀 반점이 나타나는 ‘백반증’, 과다하면 살갗이 검게 변하는 ‘아디슨병’.

미국의 흑인 팝스타 마이클 잭슨은 백인을 동경해 얼굴을 희게 바꿨다는 오해에 시달렸으나 사실 그는 백반증 환자였다. 초기 약물치료에 실패해서 모노벤존을 사용해 피부 전체를 표백한 것이다. 피부가 알룩달룩해지기보다는 차라리 골고루 흰색인 피부가 보기에 낫기 때문.

▼ 홍조띤 얼굴은 여성적 ▼

볼붉힘도 사람만의 특징. 부끄러울 때 볼에서 시작해 목 코 귓불과 윗가슴까지 2, 3초에서 길게는 5분 정도 발개지는 홍조(紅潮)는 자율신경계 중 억제를 맡는 부교감신경이 자극받아 얼굴 혈관이 넓어지면서 피가 몰리기 때문에 생긴다.

얼굴은 피부 두께가 1∼1.5㎜로 손바닥의 1.6㎜나 등의 4㎜보다 얇은데다 실핏줄이 집중돼 있어 빨개지는 것이 금새 드러난다. 여기까지가 의학적 설명.

찰스 다윈은 ‘인간과 동물의 감정표현’에서 한 장 전체에 걸쳐 홍조를 설명하며 ‘인간에게만 나타나며 선천적 장님조차도 얼굴을 붉히는데 이는 다른 사람을 의식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드는 ‘억제 증후 그리고 불안’에서 ‘홍조는 내적 무의식의 힘이 이드(Id·쾌락원칙에 지배되는, 본능적 에너지의 원천)와 초자아(양심과 도덕에 반응하는 의식) 사이에서 갈등하는 것이 전형적으로 나타난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동서양에서 홍조는 신부의 수줍은 얼굴과 연관지어져 왔으며 처녀성을 알려주는 색채신호로서의 역할도 해왔다. 고대 노예시장에서 첩으로 나온 여자가 사갈(蛇蝎)스런 남성들의 눈앞을 지날 때 홍조를 띄면 몸값이 올라간 것도 이 때문이라는 것이 인류학자들의 설명이다. (도움말〓연세대의대 해부학교실 이혜연교수, 신촌세브란스병원 피부과 방동식교수,성균관대의대 삼성서울병원 성형외과 신명수교수, 고려대의대 해부학교실 서영석교수)

<이성주기자> stein3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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