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전교조 '정치수업' 논란

  • 입력 2000년 3월 14일 19시 10분


14일 전교조가 16대 총선기간 중 ‘민주시민육성을 위한 공동수업’을 강행하겠다고 공식 입장을 밝히고 나서 파문이 일고 있다.

전교조의 이같은 방침에 대해 서울시 교육청은 이날 즉각 초중고교생들의 수업일정을 조정해 선거관련 내용에 대한 수업을 앞당기겠다고 밝히는 등 교육계가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에 따라 그동안 금기시됐던 초중고교에서의 ‘정치수업’에 대한 찬반문제를 놓고 교육당국과 학교, 학부모, 전교조간에 첨예한 논란이 예상되고 있다.

그동안 초중고교의 수업에서는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 특히 후보가 당선을 놓고 겨루는 선거에 대해 구체적인 언급을 꺼려 온 것이 사실. 일선교사 차원을 넘어 전교조라는 조직이 전국적으로 ‘정치수업’을 하겠다고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전교조의 공동수업 강행이 몰고 온 논란과 의미, 대안 등을 집중 점검한다.

전교조는 정치수업에 대해 “청소년시절부터 올바른 정치교육을 받지 않으면 지역감정이나 학연 지연 등에 얽매이는 정치적 구태를 영원히 벗을 수 없다”며 “교육현장에서 민주적 절차를 가르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고 주장한다. 한마디로 총선에 관한 공동수업은 ‘공부만 할 것’을 강요하는 우리 교육 현실을 타파하고 교육을 정상화하려는 시도라는 논리다.

하지만 전교조의 이같은 방침에 대해 교육계 일각에선 크게 우려하고 있다. 한 교사는 “정치적 성향이 강한 전교조가 과연 공정한 입장을 견지할 수 있겠느냐”는 의문을 제기했다. 또 지역감정이나 시민단체의 공천반대명단 등 지극히 민감한 문제를 다루려는 데 대한 걱정도 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나 한국교원노조 등 다른 교육단체들은 이날 “전교조의 취지에는 공감하나 자칫 학생들에게 지나친 정치의식을 심어주는 등 부작용도 있을 수 있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교육부 관계자도 “전교조 집행부가 아무리 공정성을 강조해도 전국 각지에서 7만여명의 교사가 개별적으로 수업을 진행할 경우 현장에서 어떤 정치적 편향이 드러날지 알 수 없다”고 걱정했다.

그러나 전교조측은 “지도교사는 학생들이 자연스러운 결론을 내릴 수 있도록 토론을 진행할 뿐 절대 특정정당이나 후보에 대한 지지 또는 반대는 하지 않을 것”이라고 공언하며 공정성 시비를 일축하고 있다.

교육부와 선관위는 전교조의 공동수업 방침에 대해 위법소지가 있다며 제동을 걸 움직임이다. 교육부는 “일단 전교조의 교안이 법에 저촉되는지 검토 중”이라는 신중한 입장이지만 내심 “교원의 정치적 중립을 규정한 헌법 공무원법 교육기본법 등에 위배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최종 입장은 16일쯤 나올 예정.

선관위도 우려하기는 마찬가지. 특히 △학생들에게 어떤 정당과 후보를 지지하며 그 이유는 무엇인지 묻고 △학부모의 출신지역과 지지후보를 조사하도록 한 부분에 선거법 위반 소지가 있다고 보고 있다. 선거법 108조에 따르면 선거운동기간 중에는 어떤 단체나 개인도 후보의 지지도를 묻는 여론조사나 모의투표 인기투표 등을 할 수 없기 때문. 그러나 전교조는 이를 문제시할 이유가 전혀 없다고 반박한다. 올바른 후보 선택의 기준을 가르치는 교육을 여론조사나 모의투표와 동일시할 수는 없다는 것.

전교조가 제시한 공동수업 교안대로라면 크게 문제될 것은 없다는 분석이다. 이미 선진국에서는 선거 때 정치토론 등이 일반화돼 있고 우리 교과서에서조차 ‘후보자 평가기준’으로 지역감정호소나 비리,부패정치인 배격 등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 교육법에 따르면 교과서의 단원을 교사가 재구성해 수업하는 것은 교사의 의무이기도 하다. 따라서 전교조가 밝힌 대로 “학생들에게 주제만 던질 뿐 특정 사상을 주입하지 않는다”는 공정성의 원칙만 지켜진다면 초중고교생의 올바른 정치의식을 함양한다는 취지는 공감할 부분이 적지 않다는 평가다.

성공회대 NGO학과 조희연교수는 “어렸을 때부터 어떤 후보를 선택할지 고민해 보고 직접 지역감정에 부닥치는 체험을 하는 것은 올바른 민주주의 원칙의 체득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이는 건강한 민주시민을 기른다는 우리 교육의 취지와도 부합된다”고 말했다.

문제는 일선 교실에서 선거수업을 하다보면 정치판의 뒷얘기를 포함해 별 해괴한 이야기가 다 나올 수 있고 교안대로 수업하기란 현실적으로 힘들다는 데 있다.

서울시 교육청이 14일 각급 학교에 수업일정을 조정해 선거관련 내용을 앞당겨 배울 수 있도록 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도 이같은 현장의 우려감을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한 학부모는 “한국처럼 정치가 과잉인 사회에서 의식화된 교사들이 선거수업을 하다보면 아이들이 교사의 생각에 따라 편향성을 가질 수 있다”며 “선거기간 중에 선거수업을 특별하게 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교육부도 전교조의 전격적인 움직임에 대해 부정적이어서 일반사회과목뿐만 아니라 특별활동, 학급회의 등의 각종 수업시간을 활용해 진행될 전교조의 선거관련 공동수업은 시작부터 일선교육현장에서 큰 논란과 마찰을 빚을 것으로 예상된다.

<홍성철·이완배기자> sungchu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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