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음]'서울, 100년' 사진집 영문번역 이동옥씨

  • 입력 2000년 3월 12일 19시 49분


‘한 프리랜서 번역가의 안타까운 죽음.’

서울의 20세기 역사를 고스란히 담은 사진기록집의 영문 번역에 혼신의 노력을 기울여 온 한 번역가가 그 결실을 목전에 두고 불의의 사고로 숨져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비운의 주인공은 도서출판 청천의 대표 고(故) 이동옥(李東玉·47)씨. 서울대 국어교육과 출신으로 전문번역가로 활동해 온 이씨는 지난해부터 서울시정개발연구원과 서울시립대 서울학연구소가 공동 추진해 온 방대한 사진기록집 ‘서울 20세기, 지난 100년의 역사’의 영문 번역을 도맡아 왔다.

이씨는 사흘 밤을 새워 마지막 번역 원고의 교정 작업을 마치고 귀가중이던 8일 새벽 서울 구로구 신도림동 경인로에서 교통사고를 당해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숨을 거뒀다.

이 책자는 20세기 격동의 현대사 속에 비친 서울의 모습을 담은 각종 미발굴 사진 기록과 자료들을 한데 모은 것으로 서울의 변천사를 생생히 보여줄 귀중한 자료다. 특히 파리에서 열리는 ‘세계 주요 도시 시장 회의’ 참석차 13일 출국하는 고건 서울시장이 홍보 자료로 들고 가기 위해 우선 영문판의 발간을 서둘러 왔던 것.

이씨는 80년대부터 유네스코 한국위원회가 발간하는 월간지 ‘세계로 열린 창’의 번역을 맡아와 이번 일에도 ‘최적격자’로 뽑혀 작업에 참여했다. 일이 좋아 결혼까지 미룬 채 번역 작업에 몰두해 온 그는 ‘마지막 작업’이 된 이 책의 발간을 하루 앞둔 10일 화장장에서 한 줌의 재로 변했다.

<윤상호기자>ysh100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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