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걸 스탠더드]성범죄자 신원공개 美선 '예방'

  • 입력 2000년 3월 9일 19시 47분


1994년 미국 뉴저지주에서 메건 캔타라는 7세 소녀가 이웃에 이사온 전과 2범의 성폭행범에 의해 강간당한 뒤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캔타의 부모는 이웃에 성범죄 관련 전과자가 살고 있는 사실을 알았다면 이런 일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여론에 호소해 사건 발생 두 달만에 죽은 소녀의 이름을 딴 메건스로(Megan’s Law)가 만들어졌다.

이 법에 따르면 성범죄자는 출소 후 주거지 경찰서에 의무적으로 등록해야 한다. 경찰에 등록된 신상과 소재 등 성범죄자 관련 정보는 학교와 미성년 자녀를 둔 주민들에게 통보된다. 뉴저지주에서 처음 만들어진 이 법률은 2년여만에 미국 대부분의 주로 확산됐고 마침내 96년 빌 클린턴 대통령은 연방법으로 서명했다. 이 법에 의해 50개 주의 경찰은 학교 탁아소 그리고 부모들에게 그 지역에 위험한 성폭력 전과자가 살고 있다는 사실을 통보할 의무를 갖는다.

주마다 메건스로의 요건은 약간씩 다르지만 뉴저지주법을 보면 성인 및 미성년 성폭행범은 나이 생년월일 인종 성별 신체적사항 주소 고용경력, 형선고를 받은 때와 장소, 범죄설명, 지문 등을 관할 경찰에 등록하도록 돼있다. 캘리포니아법은 한술 더 떠 손바닥문 사진 운전면허번호 차량번호, 차의 외관설명, 직업 고용인주소 문신표시여부 및 신원 확인을 위한 DNA 검사에 필요한 혈액과 침 샘플도 제공하도록 했다.

경범죄자가 등록의무를 수행하지 않았거나 업데이트 하지 않으면 1년 징역형에 처해지고 중죄자는 주 감옥에서 최고 3년의 징역형에 처해질 정도로 처벌 규정이 무겁다. 이 규정에 따라 미국 경찰에 등록된 성폭행범은 99년 10월 현재 모두 32만4924명에 이른다.

최근 한국에서도 10대 매매춘이나 원조교제가 사회문제화하면서 미성년자와 성관계를 맺은 사람의 신원을 공개할 수 있는 법안이 마련됐다. 한국판 메건스로라고 할 수 있다. 신설된 청소년 성보호에 관한 법에 따라 7월부터 19세 미만 청소년을 대상으로 성행위를 하다가 적발되면 형사처벌 외에 당사자의 신상이 공개되는 수모를 당한다. 아직 구체적 시행방안을 담은 시행령이 정해지지는 않았지만 청소년과 성행위를 한 사람은 성명 연령 직업 등의 신상과 범죄사실의 요지를 관보 게재를 포함한 대통령령이 정하는 방법으로 전국에 걸쳐 게시 또는 배포하도록 돼있다.

인권침해 소지에도 불구하고 신원공개 항목이 포함된 것은 아무런 범죄인식 없이 만연하고 있는 청소년 대상 매매춘 행위를 근절하고 나아가 우리 사회의 잘못된 ‘영계문화’를 바로잡자는 의지의 반영이다.

미성년을 대상으로 한 성폭행이나 아동 학대에 대해서는 어느 나라든 강력한 처벌을 하는 것이 국제적 흐름이다. 성인들이 미성년을 상대로 성폭행을 하는 것은 물론이고 양자간 합의로 성관계를 갖거나, 심지어 돈을 목적으로 미성년이 먼저 상대방을 유인했을 때도 성인만 무거운 처벌을 받는다.

그러나 해인법률사무소 배금자(裵今子)변호사는 “청소년을 성범죄에서 보호하기 위해서는 신원공개가 불가피하다는 것이 국제적인 법률 추세이지만 한국의 관련법은 법안이 달성하려는 본래 목적과 취지를 잘못 해석해 인권 침해의 소지가 크다”고 비판한다.

그녀는 “메건스로는 우리 동네에 성범죄자가 사는지 여부를 알고 대처할 수 있도록 실제로 필요한 사람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목적인데 반해 한국 법은 해당자에게 망신을 주어서 사회적으로 매장시키려는 의도를 지닌 것으로 해석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메건스로는 성범죄자의 신상등록과 정보 공개 등 모든 단계가 엄격한 기준과 절차에 따라 운영된다. 특히 신상정보를 제공받는 사람은 대상에 따라 △1단계, 해당 경찰 △2단계, 학교 탁아소 유치원 △3단계, 해당자와 마주칠 수 있는 특정 경계선 안에 있는 사람 등으로 구분된다. 이 과정에서 알게된 정보를 이용해 해당자를 놀리거나 위협할 경우를 대비해 엄격한 처벌 규정이 뒤따르고 있다.

이에 비해 신상명세를 관보에 게재함으로써 만천하에 알리는 한국 법은 인권침해는 물론이고 체면을 중시하는 우리 사회에서는 ‘사회적 살인’이나 다름없다.

메건스로에 대해서도 미국에서는 이미 형기를 마친 해당자에 대한 또 다른 처벌이기 때문에 헌법이 정한 ‘일사부재리의 원칙’에 위반된다는 소송이 수십 차례 제기됐다. 대표적 사례가 E B라는 가명의 성폭행 전과자가 제기한 위헌 소송이다. 3건의 성폭행과 2건의 살인혐의로 15년을 복역한 뒤 가석방된 E B는 95년 “죄값을 치른 뒤 이사도 하고 결혼을 해 새로운 삶을 살고 있는데 과거 범죄로 인해 신상을 경찰에 등록하고 이웃에 공개되는 것은 이중처벌”이라며 위헌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뉴저지주 항소법원은 “이로 인해 성폭행범들이 수치심 모욕, 주민으로부터의 배척, 고용기회상실 등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고 전제하면서도 “다른 법률도 자격 박탈, 국가보조 금지, 추방 등으로 범죄자에게 가혹한 제재를 하고 있지만 이를 이중처벌로 보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연방대법원도 97년 6월 성폭행범에게 부과되는 새로운 의무들은 사회의 보호를 위한 것이지 처벌이 아니기 때문에 위헌이 아니라며 메건스로의 손을 들어주었다.

그렇다고 메건스로의 인권침해 논란이 종지부를 찍은 것은 아니다. 뉴저지주 지방법원은 얼마전인 1월 24일 아트웨이라는 또 다른 성범죄자가 제기한 소송에서 “대중에게 성범죄자의 신상을 알리는 과정이 이들의 사생활을 침해할 수 있다”고 판결했다.

메건스로 자체는 이중처벌이 아니지만 신상을 등록하고 공개하는 과정에서 이에 관한 정보가 이해관계가 없는 사람들에게까지 과도하게 제공되고 있는 점이 문제라고 본 것이다. 이 판결에 따라 뉴저지주는 성범죄자의 신상 공개와 관련한 새로운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야 한다.

법무법인 태평양 김인만변호사는 “아동과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는 법으로 단속하는데는 한계가 있는 만큼 의식개혁과 맞물려야 한다”며 “성범죄자에 대한 신원공개가 현대판 ‘멍석말이’가 돼서는 안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는 사람이 더 무섭다" ▼

어린이를 포함한 청소년 상대 성범죄는 어느 나라에서나 가장 비윤리적이고 추악한 범죄로 분류된다.

분별력과 저항력이 없는 연령층을 대상으로 하고 피해자의 정신과 육체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기기 때문이다.

미성년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에는 성폭행뿐만 아니라 윤락 알선이나 강요, 음화 및 포르노 제작 등이 포함된다. 강력한 처벌 규정에도 불구하고 이같은 성범죄는 은밀하게 늘고 있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한국어린이보호재단에 따르면 작년 1∼6월 아동학대 신고건수 140건 중 신체적 학대 42건, 방임 40건, 정신적 학대 37건, 성적 학대가 20건 등으로 나타났다. 성적 학대는 주변 사람들이 사실을 확인하기 어렵기 때문에 실제 건수는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성폭력상담소의 96년 통계에 의하면 성폭력 피해상담 1779건 중 성인이 42.1%, 청소년이 23.6%였으며 어린이가 무려 33.7%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피해 대상 중 아는 사람에게 당한 사례가 64.9%로 대부분 가해자가 가족이나 친척 또는 동네사람이었으며 심지어 교사 등도 있었다. 특히 성범죄는 다른 어떤 범죄보다는 재발률이 높아 미국에서는 신원공개의 근거가 되고 있다.

일본과 한국에서 성행하는 이른바 ‘원조교제’는 전통적 의미의 아동 상대 성범죄와는 맥락이 다른 것도 사실이다. 화간(和姦)이 대부분이고 10대들이 직업적으로 성인을 유혹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때문에 원조교제는 아동대상 성범죄라기 보다는 매매춘에 가깝고 그런 의미에서 이 문제를 다루는 접근방식도 미국과는 달라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정성희기자> shchung@donga.com

▼ 전문가 의견 ▼

미국에서 메건스 로는 성폭행범의 사생활을 침해할 뿐만 아니라 그 범죄자의 전과가 주민들에게 알려짐으로 인해 이중처벌이라는 이유로 위헌이라는 소송이 여러번 제기됐으나 미국의 연방법원은 위헌이 아니라는 판결을 내렸다. 최근 한국에서도 원조교제 등과 관련해 신원공개를 한다는 청소년성보호법이 통과됐다. 이 법은 메건스 로처럼 경찰에 정보를 등록해 주민들로 하여금 대비케 하는 것이 아니라 관보 등을 통해 널리 알림으로써 ‘망신’을 주어 범죄예방 효과를 꾀하자는 취지다.

원조교제 등은 강력범죄에 속하는 성폭행과는 달리 대부분 합의에 의해 이뤄지는 풍속범죄이다. 이런 내용을 공표하면 한 개인을 사실상 사회에서 매장시켜버리는 문제점이 있다. 미국과는 달리 신원공개에 대한 개인의 피해가 너무 크고 위헌 소지도 있는 만큼 신중한 검토를 해야 한다.

김인만 <법무법인 태평양 행정조세팀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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