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불편해요]출근시간 버스쟁탈전

  • 입력 2000년 2월 29일 19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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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오후 8시경 서울 종로구 세종로 광화문전신전화국 앞 버스 정류장.

정류장 10여m 전방에 경기 일산신도시행 좌석버스 1000번이 나타나자 20여명이 ‘우르르’ 버스를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버스가 채 멈춰서기도 전에 차도에 내려선 사람들은 ‘은근히’ 서로 밀치며 버스 출입문 앞을 ‘선점’하기 위해 애썼다.

▼차도에서 몸싸움 일쑤▼

이날 오후 10시경 서울 서초구 서초동 강남대로변 버스 정류장, 서대문구 신촌로터리 좌석버스정류장 등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장거리를 운행하는 버스가 도착할 때마다 수십여명이 떼를 지어 뛰어다니는 장면이 연출됐다.

일산신도시에서 세종로의 직장으로 출퇴근하는 회사원 이형태씨(38)는 “장시간 서서 가지 않으려면 몸싸움을 해서라도 먼저 버스에 탈 수밖에 없다”며 “버스를 탈 때마다 정글에서 경쟁하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출퇴근 시간의 서울과 신도시의 주요 버스 정류장에는 어김없이 이처럼 버스를 먼저 타기 위한 혼잡이 벌어진다. 이에 대해 많은 시민들은 ‘질서의식 부재(不在)’만 탓할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줄을 설 수 있도록 정류장 시설을 바꿔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회사원 이미경씨(29·여·경기 성남시 분당구 서현동)는 “누군가 나서 줄을 서자고 제의하기도 쉽지 않고 줄을 만들어도 버스가 멀리 떨어진 곳에 정차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며 “노선별로 작은 표지판을 세우고 버스가 표지판 앞에서만 문을 열면 자연스럽게 줄이 만들어 질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서울 서대문구 대현동 신촌로터리 인근의 인천행 버스 정류장, 중구 정동 덕수궁 옆 좌석버스 정류장 등에는 노선별 표지판이 있고 버스가 그 앞에 서는 게 관행이 된 일부 정류장에는 언제나 질서정연한 줄서기가 정착돼 있다.

▼노선별 정차표지판 필요▼

하지만 정류장 시설을 관리하는 서울시 관계자는 “노선별 표지판을 설치하면 그에 맞춰 정류장 앞 도로에 버스가 정차할 자리가 있어야 하는데 도로 여건상 그만한 공간을 내기 힘들다”며 표지판 설치에 난색을 표했다.

그러나 시민들은 “모든 노선 버스에 줄서기 표지판을 세울 수는 없고 그럴 필요도 없지만 주요 정류장의 몇몇 노선에 대해서는 줄서기 표지판을 세우고 버스회사에 정차위치를 지키도록 지도하는 게 충분히 가능하다”며 개선을 촉구하고 있다.

<이기홍·이명건기자> sechep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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