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기사들은 이구동성으로 이번 결승전 세 판을 놓고 ‘조9단이 실수를 했다기보다 루이9단이 잘 두어서 이긴 것’이라고 평하고 있다. 루이9단은 타향살이의 어려움 속에서도 스스로 갈고 닦은 기력(棋力)과 정신력으로 당당히 정상에 선 것이다. 우리는 이창호 조훈현이 일본 중국 기사를 이겨 세계를 제패(制覇)했을 때는 물론이고, 유창혁이 후지쓰배 우승컵을 안았을 때, 그리고 서봉수가 잉창치배대회에서 우승하고 진로배 국제기전에서 일본 중국 기사를 계속 무찔러 전무후무한 9연승의 위업을 기록했을 때 한없이 감동하고 갈채를 보냈다.
그런데 한국 기사가 세계를 제패하면 ‘가상’한 것이고 루이가 한국기전을 우승하면 서운하다고 여긴다면 그건 ‘닫힌 의식’이요 전근대적인 감상(感傷)일 뿐이다. 참으로 경쟁력과 실력을 갖춘 자만이 인정받고 누리는 ‘열린 21세기’의 벽두에, 루이9단의 쾌거는 그녀 개인과 중국의 기쁨만이 아니라 한국과 한국바둑을 위해서도 길조(吉兆)로 여겨져야 할 것이다.
21세기는 열린 시대, 국경 같은 장벽이 의미를 잃어가는 시대다. 인류역사는 크고 작은 장벽을 허물어 자유와 진보의 강으로 흘러온 역사라고 할 때, 루이의 우승은 아직도 엄존하는 ‘국경’ ‘성별’ 장벽을 장쾌하게 허물어뜨린 위업이다. 그녀가 혼신의 힘을 기울여 닦은 기예(棋藝)로 쌓아올린 승리를 의미있게 받아들이는 자세가 바로 우리 ‘안’의 폐쇄성과 텃세의식 같은 것을 지우고 ‘국제성과 열림’을 확보하는 길 아닐까.
루이의 승리는 ‘작고도 빛나는 힘’이 인정받고, 이른바 벤처가 위력을 발휘하는 시대의 여명(黎明)을 장식하고 있다. 집단이나 그룹 패거리의 위력은 이제 흘러가는 것이 되고, 작고도 미력해 보이는 개인의 창의와 경쟁력이 발언권을 행사하고 국제적으로 주목받는 시대가 어떤 것인지를 보여준다. 한국 프로 기사들은 물론 국민 모두가 눈여겨볼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