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덴젤 워싱턴/"권투선수 연기위해 18kg 감량"

  • 입력 2000년 2월 20일 20시 02분


‘말콤X’ ‘크림슨 타이드’ ‘본 콜렉터’ 등으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할리우드의 지성파 흑인 스타 덴젤 워싱턴(46). 최근 ‘허리케인 카터’로 미국 골든 글로브 남우주연상을 탔고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도 올라 있는 그를 독일 베를린에서 19일(현지시간) 만났다.

베를린 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오른 ‘허리케인 카터’는 백인의 인종차별 때문에 무려 22년이나 억울한 옥살이를 한 실존 인물 루빈 허리케인 카터가 석방되기까지 겪어야 했던 고통과 투쟁을 그린 영화. 덴젤 워싱턴은 주인공 허리케인 카터 역을 맡아 20대 후반부터 60대까지의 연령을 넘나들며 빼어난 연기를 선보인다.

미남 배우 덴젤 워싱턴은 할리우드에서 흑인 최초로 주연급 스타가 된 시드니 포이티에(73)의 뒤를 잇는 ‘블랙 스타’ 2세대의 선두주자. 그는 인터뷰 도중 “스피리트(Sprit)가 한국말로 뭐냐?”고 묻더니 또렷하게 “정신”을 따라 발음하는 등 시종 쾌활한 태도로 인터뷰를 주도했다.

-‘허리케인 카터’에서 권투선수인 루빈 허리케인 카터 역을 연기하기 위해 18㎏이나 감량했다고 들었다.

“지금은 몸무게가 원래대로 돌아왔지만, 열 네 달 동안 매일 10㎞씩 뛰며 살을 뺐다. 그리고 여섯 달 동안 날마다 2시간씩 프로 권투선수에게 권투를 배웠다.”

노먼 주이슨 감독도 “20대 후반의 권투선수를 연기하기에 워싱턴이 나이가 좀 많아 걱정했는데, 아무도 도와줄 수 없는 일을 혼자서 잘 해냈다”면서 “정말 굉장한 배우”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유명 배우인데도 영화에서와 같은 인종차별을 체험한 적이 있는가?

“어릴 때 미국 남부지역을 여행한 적이 있는데 흑인은 백인과 같은 버스에 앉지도 못하고 주유소 화장실도 이용할 수 없는 게 이상했다. 백인이 있는 식당에 갈 수가 없어 어머니가 음식을 마련해 자동차 안에서 먹었던 기억도 있다. 그 때는 이유를 몰랐기 때문에 슬프지 않았지만, 성인이 되어서는 느낌이 달랐다. 유명인이 된 뒤에도 뉴욕에서 내 앞에 택시가 서지 않는 경우가 있다.”

-할리우드에서 활동하기에 흑인 배우라는 것이 핸디캡인가, 아니면 이로울 때도 있는가.

“내겐 선택의 여지가 없다, 배우를 그만두는 선택은 할 수 있겠지만. 그러나 인종차별을 늘 느끼는 건 아니다. 사람들은 인종 뿐 아니라 체형, 성적 취향에 따라서도 서로를 차별한다. 바람직하지는 않지만 인간이기 때문에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말콤X’나 ‘허리케인 카터’처럼 억압받는 흑인을 대표하는 이미지가 강한 배역을 맡는 것이 부담스럽지는 않은가?

“전혀 그렇지 않다. ‘본 콜렉터’처럼 인종과 아무런 상관없는 연기를 할 때나 ‘허리케인 카터’처럼 흑인의 정체성을 강하게 드러내는 연기를 할 때나 심리적인 부담은 똑같다. 난 배우니까.”

덴젤 워싱턴은 89년 ‘영광의 깃발’로 미국 골든 글로브 남우조연상을 수상했으며 그 해 베를린 영화제에 다녀간 뒤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탔다. 그는 “이번에도 그 때와 똑같은 패턴”이라면서 “그 때처럼 좋은 결과가 나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베를린〓김희경기자> susan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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