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 어떡하죠?]이희경/부부싸움전 자녀생각을

  • 입력 2000년 2월 20일 20시 02분


양동석군(가명)은 실업계 고교 1학년 학생이다. 동석이는 비행청소년이 아니고 평범하고 심성이 착한 학생이다. 일탈행동이라면 가끔 무단결석을 해 담임선생님에게 야단맞고 벌로 청소하는 정도였을 뿐이다.

2학기때 수업시간 개편으로 동석이 학급에 들어가게 되면서 동석이게서 남다른 태도를 발견하게 됐다. 수업시간에 옆 짝과 장난치고는 지적당하면 “내가 그러지 않았다”고 시치미를 떼고 또 다시 같은 행동을 반복했다. 어리광인지, 유치한 행동인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정도가 심해 야단이라도 칠라치면 금방 눈물을 글썽였다. 고교 1년생이 수업시간마다 정서적으로 미숙한 행동을 하는 이유를 알아보기 위해 어느 날 짬을 내 상담실로 오게 했다.

2학기 초 전교생에게 실시한 심리검사 자료를 뒤적이다 동석이가 그린 그림을 찾아냈다. 일반적으로 ‘나무 그림’은 자아상을 반영한다. 동석이가 가진 자아상은 메마른 나무에 잎 대신 돈이 주렁주렁 열렸고 사람의 심장 부분에 해당하는 나무 가운데가 칼로 찔려 있었다. 찔려진 칼은 위아래로 떨렸다.

마주앉아 상담하는 동안 동석이는 많이 울었다. 어려서부터 일상적으로 본 집안 광경은 아버지가 어머니를 때리고 집기가 날아다니는 것이었다. 엄마가 초등학교때 자살을 기도해 쓰러졌는데 동석이 눈에 비친 아버지의 태도는 냉담 그 자체였다. 병원에 연락도 하지않고 물 한잔 떠다주지 않는 아버지를 보고 살의마저 느꼈다고 고백했다.

결국 부모는 이혼을 했고 어머니는 고통스러운 결혼 생활의 후유증으로 정신병원에 두 번씩이나 입원했다. 싸움의 원인이 뭐였느냐고 묻자 동석이는 “다 그 원수 같은 돈 때문이죠”라고 대답했다. 요즘은 가사를 어머니 대신 자신이 하지만 집에서 부모가 싸우는 모습을 보지 않아서 좋고, 어머니가 가끔 학교에 찾아온다고 했다.

누구보다도 신뢰하는 대상인 부모가 서로 화합하지 못하고 육탄전을 불사하는 싸움을 매일처럼 벌이는 모습을 보면서 아이들이 입는 정서적인 상처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크다. 부모에게 증오가 생기면 분노와 죄의식이 함께 수반되기 때문에 아이들은 더 큰 정서적인 갈등과 혼란을 경험한다.

동석이 부모가 정신 없이 싸울 때 동석이는 심한 정서불안으로 학교에서 과잉행동을 하고 황폐한 심리상태를 반영하는 그림을 그린 것이다. 자녀를 정서적으로 자상하게 배려해주지도 못하고 오히려 마음에 깊은 상처를 입히는 사람들은 부모로서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다. 자동차를 운전하는데도 면허증이 필요하거늘 소중한 아이들을 키우는 부모들도 자격증이 필요할 것 같다는 다소 엉뚱한 발상을 가끔 해본다.

이희경(운산기계공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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