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수형/피의자된 시민운동가

  • 입력 2000년 2월 16일 23시 04분


낙천 낙선운동을 이끌고 있는 총선시민연대 박원순(朴元淳)상임집행위원장이 16일 서울지검에 출두했다.

서울지검 청사는 변호사로서 그가 숱하게 드나들었던 곳. 그러나 그는 피의자를 변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자신이 피의자로 조사받기 위해 들어섰다.

그는 무척 수척해 보였다. 총선연대 후배들은 박위원장이 하루에 서너 시간도 못 잔다고 전했다. 한 후배는 “건강이 염려돼 병원에 가보라고 했지만 쇠귀에 경읽기다”고 말했다.

박위원장은 기자실에 잠시 들러 ‘소감’을 말했다. 그는 지난 한달간 ‘창살 없는 감옥’과 같은 생활을 했다고 말했다. 명단에 포함된 정치인들의 불만과 항변, 그리고 끝없이 이어지는 정치권의 음모론과 유착설 등등. 그는 “이제 정말 숨고, 도망치고, 물러서고 싶다”고 말했다. 그래서 차라리 검찰이 자신을 구속해 쉴 수 있게 해주면 정말 고맙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쉴 수도 없고 쉬어서도 안 되는 게 그의 입장인 것 같다. 부패한 정치를 개혁해야 한다는 많은 사람의 열망과 기대가 그에게 집중돼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현실’이다. 그는 당장 실정법 위반 혐의를 받고 있다. 낙천 낙선운동이 개정된 선거법 위반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박위원장은 “악법(惡法)은 법이 아니다”고 말했다. 시대착오적인 법이 법이라는 이유만으로 지켜져야 한다면 그 악법은 언제까지나 우리를 속박할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이 말은 논란의 소지가 많다. 불완전한 인간이 사는 현실에서 소크라테스 시대 이후로 줄곧 ‘악법도 법’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또 다른 한마디. 그러나 “올바른 일을 하느라 수난을 겪는 사람에게는 일단 경의를 표해야 한다”는 시인 게오르규의 말은 상기해볼 필요가 있다. 사심 없는 시민운동가를 숨거나 물러서게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다.

<이수형기자> so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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