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퇴폐 가족탐-이발소 행정공백 틈타 뜻밖호황

  • 입력 2000년 2월 9일 20시 06분


강력한 단속에 밀려 한때 자취를 감췄던 ‘증기탕(일명 터키탕)’이 최근 ‘가족탕’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생겨나 퇴폐영업을 일삼고 있다. 또 이른바 퇴폐 이발소도 요즘 뜻밖의 호황을 누리고 있다.

이들 탈법 윤락업소가 다시 기승을 부리고 있는 것은 증기탕이나 퇴폐이발소 등을 규제했던 공중위생법이 지난해 8월 폐지되고 그 대신 공중위생관리법이 제정됐으나 아직 시행규칙이 마련되지 않아 윤락행위를 단속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실태▼

지난주 서울 강남의 한 호텔 지하 ‘가족탕’. 60년대에 사라진 가족탕이라는 이름을 붙여 놓았지만 들어가 보면 예전 증기탕 그대로다.

한 여종업원은 “15만원을 내면 각종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며 “요즘 예전보다 더 손님이 많다”고 자랑했다.비단 이곳뿐만 아니다. 98년에 문을 닫았던 서울시내 증기탕 중 상당수가 최근 다시 문을 열었다.

한 구청 관계자는 “최근 문을 연 가족탕이나 스포츠마사지시술소 등은 윤락행위를 일삼는 예전의 증기탕이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시설을 예전보다 더 호화롭게 꾸민 곳도 많다. 밤늦은 시간이면 몇십분씩 기다려야할 정도. 서울뿐만 아니라 경북 경주시 등 지방 관광도시도 대부분 비슷한 실정이다.

▼법의 허점▼

퇴폐업소의 대명사격이던 증기탕은 98년 8월 정부가 공중위생법 시행규칙에 ‘목욕업소에 이성(異性) 입욕 보조자를 둘 수 없다’는 조항을 신설하면서 찬바람을 맞고 대부분 문을 닫았다.

그러나 정부는 지난해 8월 규제완화 차원에서 공중위생법을 폐기했다. 이에따라 이성 입욕보조자 금지조항, 밀실 칸막이 규제 조항 등이 들어있던 시행규칙도 없어졌다. 공중위생관리법이 새로 제정됐으나 아직 시행규칙이 마련되지 않아 있으나마나한 법이 돼버렸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여성단체들은 조속히 시행규칙을 마련하라고 요구하고 있지만 ‘매춘을 단속할 수 있는 풍속영업규제법이 있는데 굳이 공중위생관리법에까지 그런 시행규칙을 둘 필요가 있느냐는 의견을 제시하는 부처도 있어 아직 이견을 조정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행 공중위생관리법은 증기탕 가족탕 대중목욕탕 등 모든 형태의 목욕업에 대해 24시간 영업을 허용하고 있다. 또 증기탕에 대한 인허가제도 없어져 업주는 허가나 신고절차를 거치지 않고 자유롭게 업소를 운영할 수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98년 8월 당시 서울시내에는 40여곳의 증기탕이 허가를 받아 운영하다가 문을 닫았다”며 “현재 당시의 증기탕 업소들을 포함해 최대 100여개 업소가 윤락 퇴폐 영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지만 인허가 대상이 아니므로 정확한 숫자도 파악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단속의 어려움▼

일선 지방자치단체 관계자들은 목욕업소들의 윤락 퇴폐영업에 대해 ‘심증은 가지만 단속할 권한이 없어’ 속병을 앓고 있다고 말한다.

서울 강남구 이경재(李敬載·54) 보건위생과장은 “최근 관내에 가족탕 등의 간판을 내걸고 목욕업을 하는 업소들이 사무실 밀집지역 뿐만 아니라 주택가에도 침투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대책이 없다”고 말했다.

경찰도 단속의 어려움을 느끼기는 마찬가지다. 이성 입욕보조자가 있는 현장이 있다해도 매춘 현장을 목격하거나 당사자들이 매춘사실을 시인하지 않는 한 처벌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법 규제의 고삐에서 풀린 것은 퇴폐 이발소도 마찬가지다. 현행법엔 이 미용업소의 칸막이, 밀실 시설 등을 단속할 시행규칙이 없어 퇴폐 윤락행위를 단속할 수단이 없어진 것이다.

특히 최근 경찰이 서울 성북구 월곡동 미아리 텍사스, 강동구 천호동 윤락가 등을 대대적으로 단속하면서 윤락녀들이 퇴폐 목욕업소와 이발소로 몰려들고 있다고 지자체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서울의 한 구청 관계자는 “한쪽에서 집중적으로 단속을 해도 다른 쪽에서 규제가 풀린다면 실효가 없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이기홍·이명건기자>gun4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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