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순덕/학교는 왜 학교일까

  • 입력 2000년 2월 8일 20시 19분


“학교가 공부하는 곳인줄 아니? 아니야. 공부는 학원에서 해. 학교는 평가받으러 가는 거지.”

학교 다니는 자녀를 둔 엄마들이 하는 소리다.

여고1학년인 A는 방학 동안 학원 5군데를 다녔다. 좋은 학원과 강사를 찾아내는 건 엄마의 능력이다. 평소에 엄마들끼리 친분을 다져 놓아야 정보를 얻을 수 있으므로 직장을 가진 엄마는 절대적으로 불리하다. 수학도 도형을, 미적분을 잘 가르친다고 소문난 사람이 따로 있었다. 영어도 기본적인 참고서 강의 외에 듣기와 문법, 특차 준비생을 위한 토플선생이 ‘부페식’으로 존재했다.

대학입시를 눈앞에 둔 고교생만이 아니다. 중학교 진학을 앞둔 B도 방학 내내 학원에서 중학과정을 공부했다.

B의 엄마가 영어 수학은 예습을 시켜야 할 것 같아 서울 목동의 집 근처 학원에 아이를 데리고 갔더니 반편성 시험을 보는데 초등학교 과정이 절반, 중학과정이 절반이었다.

“아니, 아직 배우지도 않았는데 중학교 시험을 보면 어떡해?”

놀란 사람은 B의 엄마뿐이었다.

“강남에는 초등학교 5학년때부터 시작해 중학교 2, 3학년 과정을 한번씩 훑은 아이들이 많다더라. 남보다 앞서 공부하지 않고 진학하면 학교 수업을 따라가지 못한다”고 이웃집 엄마가 B의 엄마를 딱하다는 듯이 보며 일러주었다. 입학후 ‘별로 배운 것도 없이’ 치른 첫 시험성적이 중고교 6년을 가고, 그 성적으로 대학까지 가기 때문에 초등학교 때부터 미리미리 공부하지 않으면 뒤진다는 얘기였다.

학교에서 공부할 것을 학원에서 다 배우면 그럼 학교엔 뭐하러 가나? 기가 막혀 하는 내게 엄마들이 들려준 대답이 “학교가선 시험을 본다”는 거다. 학교란 감시와 규격화의 현장이며 그 규율의 장치는 주로 시험이라는 제도를 통해서 구현되어왔다고 한 미셸 푸코의 말이 절로 떠올랐다.

2002학년도부터 대학입시가 획기적으로 달라진다는 발표가 나온 지 오래지만 엄마들은 믿지 않는다. A엄마는 “차라리 대입 개선안이 나오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뛰는 제도 위에 나는 엄마’가 있는 법. 어떤 제도가 나오더라도 학교가 제 역할을 못하는 바에야 그에 맞는 과외선생을 찾아내는 건 엄마들의 몫이기 때문이다. 이미 수행평가를 위해 인터넷으로 온갖 자료를 뽑아 과제물을 내도록 도와주는 과외가 따로 있고, 특차입시용 자기소개서를 써주는 전문가도 비싼 돈을 받고 활동하고 있다.

한국에서 초등학교 5학년까지 다니다 캐나다로 이민간 이수경(15)이란 여학생은 최근 ‘한국애들 정말 불쌍해’란 책을 내놓았다. “캐나다 아이들은 하고 싶은 일들을 마음껏 하며 즐겁게 학교생활을 한다. 한국의 내 또래 친구들은 과외나 학원 공부에 시달리고 있는데, 같은 한국인이면서 나 혼자만 이런 환경에서 생활한다는 것이 미안할 정도”라고 썼다.

모두들 수경이네처럼 이민을 갈 수는 없다. 교육개혁을 해야 하지만 일단 내 아이는 공부 잘해 대학가야 한다고 여긴다면 학교는 절대로 달라지지 않는다. 어른들이 주식투자에 쏟는 관심의 1%만 학교에 쏟아도 우리 아이들은 행복해질 수 있다.

<김순덕기자>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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