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벤처기업 사원들은 카키색을 좋아한다

  • 입력 2000년 1월 27일 18시 30분


서울 서초구 서초동 산학재단빌딩 7층에 자리잡은 멀티미디어 및 웹디자인 벤처기업 디자인스톰의 사무실.

30여명의 사원들이 머리에 헤드폰을 낀 채 컴퓨터 앞에서 무언가 열심히 두드리고 있다. 남녀 모두 캐주얼 바지에 스웨터 혹은 셔츠 차림. 칸막이 한켠 옷걸이엔 점퍼 아니면 반코트 일색이다.

‘드레스 코드’가 없다는 젊은 벤처기업 종사자들. 그러나 색상은 카키, 스타일은 고급스럽고 도회적 분위기를 내는 프레피(Preppie:미국의 아이비 리그에 속하는 대학에 진학하기 위한 예비학교 학생 또는 졸업생)룩이 대부분이었다.

▼벤처=카키▼

1840년대 인도 펀자브의 숨막히는 열기 속에서 영국군들이 순면 파자마 바지를 차 잎에서 나온 추출물로 염색해 입기 시작하면서 카키색이 탄생했다. 카키는 힌두어로 흙이라는 의미.

1909년 미국의 테오도르 루즈벨트가 아프리카 사파리에 나설 때 카키를 걸치면서 카키는 미국으로 건너갔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젊은이들은 카키바지를 입고 전쟁터로부터 돌아왔고 고등학생이나 대학생들도 군인들에 질세라 카키를 입기 시작했다. 여기에 프레피룩이 인기를 끌면서 프레피룩과 잘 들어맞은 카키가 애용됐다.

이제 더 이상 카키는 카키색 옷만 일컫지 않는다. 모험가나 혁신가들과 연결돼 ‘길들여지지 않는 정신’이라는 상징성이 강화됐다. 약간의 구김은 자유와 모험을, 지퍼와 주머니는 편안함과 실용성을, 민트그린 블루 오렌지 등 다양한 색상은 젊은 생각을 표현한다. 놀 듯이 일하고, 일하듯 노는 벤처종사자들에게 ‘워크&플레이(Work & Play)’를 표방한 카키는 새로운 대안인 셈.

▼캐주얼로, 때로는 세미정장으로▼

벤처기업과 대기업의 주말 캐주얼 복장 근무가 확산되는 추세에 맞춰 카키 캐주얼 브랜드가 잇달아 선보이고 있다. 빈폴 폴로 씨피컴퍼니 등 기존 브랜드에 이어 직수입브랜드인 다커스와 내셔널브랜드인 인난찌 및 써스데이 아일랜드가 다음달부터 선보인다.

디자인스톰의 손정숙사장(34)은 “직원들이 일할 땐 캐주얼한 차림이지만 고객에게 프리젠테이션을 할 때는 고객이 믿음을 갖도록 정장이나 세미정장을 입도록 한다”고 말한다.

남성 정장 브랜드들도 이를 위해 한층 세련되고 편안한 캐릭터 정장을 선보이고 있는가 하면 캐주얼 브랜드들도 세미 정장을 출시하고 있다. 제일모직의 엔트로 갤럭시가 출시를 앞두고 있고 캐주얼브랜드 이지오도 이지오 꼴레지오네란 이름으로 다음달부터 고급스런 세미 정장을 선보인다.

구매력을 갖춘 20대와 한때 신세대였던, 그리하여 여전히 20대 패션마인드를 잃지 않는 30대를 겨냥한 이들 브랜드의 키워드는 고급스러움. 엠포리오 아르마니, 휴고 보스 등 외국브랜드를 선호해온 고객들을 사로잡겠다는 태세다. 여성패션의 고급화와 함께 젊은 남성을 위한 패션도 갈수록 비싸지는 셈이다.

<김진경기자>kjk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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