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득헌의 스포츠 세상]정치와 스포츠가 만나면…

  • 입력 2000년 1월 24일 18시 34분


스포츠가 썰렁해서야

“아무리 야구가 좋다 해도….” “테이블에서의 정상회담이상 실속 있지….”

피델 카스트로 쿠바국가평의회의장과 우고 차베스 볼리바르 베네수엘라대통령이 지난해 11월 18일 쿠바의 아바나 야구장에서 만났다.

73세의 카스트로는 쿠바팀의 감독으로, 44세의 차베스는 베네수엘라팀의 투수로 친선경기를 진두 지휘했다. 1959년 혁명이후 줄곧 나라를 이끌어온 카스트로는 야구광. 차베스는 한때 미국 메이저리그 진출을 꿈꾸었던 투수 경력의 소유자. 친선경기는 이베로아메리카 정상회의 후의 행사였다.

강타자로 이름을 날렸던 쿠바의 안토니오 무뇨스를 필두로 40대부터 60대까지 왕년의 대선수 소개에 초청된 5만5000여 관중은 열광했다. 경기는 베네수엘라 퍼스트레이디 마리사벨의 시구로 시작됐다. 쿠바에 도착하자마자 야구장으로 달려가 연습투구까지 했던 차베스는 선발투수로 나와 4이닝이나 던졌다. 은퇴선수 주축의 경기는 9회 젊은 선수들을 기용한 카스트로의 노회한(?) 작전으로 쿠바의 5대4 승리. 두 정상은 3시간의 경기 후 ‘두 나라가 승리한 아바나의 밤’이었다고 선언했다.

카스트로와 차베스의 비판자들은 이를 ‘두 정상의 정치쇼’로 단정했지만 꼭 그렇게 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올림픽헌장에서 아마추어리즘이란 말이 사라진 지 30년에 가깝고 1970년대 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장이었던 킬러닌도 회고록에서 ‘위원장 일의 95%가 정치적 일’이었다고 밝혔듯이 스포츠는 크게는 정치적 행위이기 때문이다. 가까운 예로 지난해의 남북한농구나 최근 프로야구단과 선수간의 대립도 스포츠 행위로만 해석하기는 어렵지 않겠는가. 그리고 눈여겨봐야 할 대목은 친선야구가 두 나라 국민을 매우 즐겁게 했다는 점이다.

지난주 김대중대통령이 이희호여사와 함께 태릉선수촌을 방문했다. 올림픽이 열리는 해에 국가원수가 대표선수들을 격려한 게 이상할 것은 없지만 현정부는 스포츠를 홀대한다는 소리를 들어온 터라 다소 의외라는 느낌은 든다. 지난해 10월 김대통령의 느닷없는 ‘골프대중화’ 발언 때도 다소 혼란스럽게 느껴졌었다.

그런데 의외의 일은 또 있다. 정부부처 장관의 선수촌 격려방문이 2월말까지 빼곡이 예정돼 있는 것이다. 실세라는 박지원 문화관광부장관이 국무회의 자리에서 요청한데 따른 것이겠다.

어쨌든지 나는 선수들에게 실질적 도움이 되리라는 점에서 그런 격려를 좋게 보는 쪽이다. 다만 정치적 의미가 있든 없든 스포츠 행사가 웬일인지 썰렁해 보인다는 게 아쉽다.

윤득헌(논설위원)dhy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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