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9년 뉴욕. 새세기를 앞두고 고문 같은 낡은 수법 대신 합리적 수사기법이 도입돼야 한다고 믿는 젊은 수사관 크레인(조니 뎁 분)이 사사건건 딴죽을 걸자, 귀찮아진 상관들은 그를 연쇄살인사건이 벌어진 시골 마을 슬리피 할로우로 보내버린다. 연쇄살인사건의 공통점은 모든 피살자들의 머리가 잘려 없어진다는 것. 마을 사람들은 목없는 귀신 ‘호스맨’의 짓이라고 설명하지만, 크레인은 이를 미신으로 치부한 채 괴상한 발명품들을 동원해 과학적 수사를 시도한다.
‘가위손’ ‘에드우드’에서처럼 팀 버튼 영화에서 가장 빛이 나는 배우 조니 뎁은 이 영화에서 이론에만 강할 뿐 실제로는 서툰 과학의 신봉자를 코믹하게 풍자한다. 호스맨 역의 크리스토퍼 워큰은 다른 배우의 기용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적역이다.
‘슬리피 할로우’는 무엇보다 비현실적인 상상을 시각적 이미지로 옮겨 놓은 세트 디자인과 특수효과, 촬영 등이 탁월한 ‘아름다운’ 공포영화다. 고담시 세트를 빼놓고 ‘배트맨’을 이야기할 수 없듯, 저택뿐 아니라 숲과 과수원까지 정교하게 만든 세트는 영화에 몽환적인 기운을 불어넣는다. 고통스러운 듯 휘어 있고, 피가 흐르는 ‘죽음의 나무’ 디자인과 그 안에서 말을 탄 호스맨이 뛰쳐나오는 장면 등은 감탄을 자아낼 정도다.
그러나 팀 버튼이 시각적 이미지 창출에 들인 공에 비해 이야기는 너무 판에 박힌 듯한 느낌이다. 어머니의 죽음 이후 신을 믿지 않고 이성과 과학적 판단을 신봉해오던 크레인은 호스맨을 목격한 뒤 내면의 분열을 겪지만, 그의 혼란은 더 이상 진전되지 않는다.
전설과 공포영화에 바치는 헌사처럼 보이는 외양에도 불구하고, 바닥을 단단히 받치는 신화적인 무게가 느껴지지 않는 결말 때문에 ‘슬리피 할로우’는 광분한 연쇄살인범의 이야기 정도로 싱겁게 끝난다. 미국 소설가 워싱턴 어빙(1783∼1859)의 고전 ‘슬리피 할로우의 전설’이 원작. 18세 이상 관람가. 29일 개봉.
<김희경기자>susan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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