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권순활/일본의 '보겔환상' 반성론

  • 입력 2000년 1월 10일 19시 48분


최근 일본에서 ‘잃어버린 10년’에 관한 책이 잇따라 출간됐다. 1980년대까지 욱일승천한 일본경제가 1990년대의 10년 동안 경험한 추락의 원인을 분석하고 부활전략을 제시하는 책들이다.

작년 12월에 나온 ‘일본의 잃어버린 10년’. 저자는 경제기획청 주요 과장을 거쳐 현재 대장성 재정금융연구소 차장인 하라다 유타카(原田泰). 10권 가까운 책을 내놓았고 날카로운 분석력으로 정평 있는 ‘경제논객’이다. 이 책은 흥미 있는 문제를 제기한다. “일본인들은 에즈라 보겔 교수에게 속은 것은 아닐까”라는 것. 미국 하버드대 교수 보겔은 일본경제와 사회를 극찬한 ‘저팬 애스 넘버 원(최고로서의 일본)’을 1979년에 펴내 국제사회에 ‘일본 배우기’ 열풍을 일으켰다.

그러나 하라다는 “1970년대부터 일본경제의 구조적 문제점이 내재돼 새로운 시각과 개혁이 필요했는데도 일본은 보겔의 칭찬에 들떠 상황을 안이하게 파악하고 문제해결을 미루기만 했다”고 지적한다. 그는 또 “지금 보겔의 책을 다시 읽어보면 금융시스템과 관료제도 등 그가 칭찬한 ‘일본적 강점’이 강점이기는커녕 대부분 일본경제의 병을 깊게 만든 요인이었다”고 한탄한다.

그때와 반대로 요즘에는 미국식 자본주의가 유일한 처방전이라는 주장이 세계를 풍미한다. 미국식을 따르지 않으면 발전에서 뒤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극단적 시각도 있다. 그러나 유럽은 물론 ‘경제 패전국’ 일본에서도 미국식 자본주의의 맹목적 수용보다는 ‘제3의 길’이나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에 대한 관심이 높다. ‘보겔 환상’의 대가를 치르면서 배운 교훈일까.

외부의 평가는 참고할 만하다. 그러나 외부의 칭찬에는 오류와 함정도 있을 수 있다. “보겔에게 속았다”는 일본의 반성은 우리에게도 많은 것을 생각케 한다.

권순활<도쿄특파원>shkwon@donga.com

권순활

<도쿄〓권순활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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