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포커스]IMF 넘었나했더니…CEO들이 쓰러진다

  • 입력 2000년 1월 9일 19시 54분


기업인들이 쓰러지고 있다. 수십년간 격무와 스트레스에 익숙하도록 몸을 맞춰왔지만 외환위기 이후 2년여 동안 지속된 구조조정의 스트레스와 긴장감에는 배겨나지 못하고 있다.

외환위기의 암흑에서 벗어난 지금도 경영환경은 한치 앞을 볼 수 없는 ‘안개속’. 사세를 한껏 키워놓은 기업인이라도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압박감을 호소한다. 재계에서는 잇따른 최고경영자들의 건강 악화와 기존 그룹의 몰락으로 3세 경영인의 시대가 일찍 찾아올 것으로 점치기도 한다.

▼위기감 급속 확산▼

기업인들의 ‘위기감’은 이건희삼성회장(58), 정세영현대산업개발명예회장(71)이 공교롭게도 미국 텍사스주 MD앤더슨 암센터에서 동시에 진료를 받으면서 급속히 확산됐다. 두 그룹 모두 중병은 아니라고 밝히고 있지만 재계에서는 반신반의하는 분위기.

‘몰락한 신화’의 주인공 김우중전대우회장(63)은 유럽에서 칩거하다 최근 미국으로 거처를 옮겼다. 측근들은 “98년말부터 심장에 이상을 보이기 시작해 지난해 구조조정 과정에서 방치하지 못할 정도로 건강이 악화됐다”며 “미국내 전문병원에서 치료를 받기로 했다”고 밝혔다. ‘일벌레’였던 김전회장은 98년말 대우그룹에 대한 시장의 의구심이 확산되면서 끊었던 담배를 다시 입에 댔고 뇌수술을 받기도 했다.

LG반도체와 ‘먹느냐, 먹히느냐’는 피말리는 통합협상을 벌였던 김영환현대반도체사장(57)은 LG반도체 인수에는 성공했지만 현재 병원에 입원중. 지난해말 뇌혈관계 질환으로 쓰러져 서울 중앙병원 응급실로 실려갔다. 긴급 수술을 받았지만 회복되더라도 당분간 몸을 사릴 전망이다.

노관호전현대자동차사장(59)은 안면경색으로 1년여 동안 대외활동을 못하다 지난해말 사임했다. 대우 건설부문 정진행부사장(56)은 5일 출근 후 ‘몸이 좋지 않다’며 퇴근했다가 자택에서 심장마비로 운명했다.

조중훈한진회장(79)은 지난해말 고혈압 악화로 한차례 쓰러졌다. 한진측은 ‘고령 탓’이라고 말했지만 재계에서는 아들 양호씨의 구속과 평생 키운 그룹의 신뢰도 하락 등이 겹쳐 일어난 ‘화병’으로 보고 있다.

▼수면부족 호소 많아▼

빅딜과정에서 정부와 재계의 ‘접점’ 역할을 했던 손병두전경련부회장(58)은 ‘가장 큰 고충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수면부족”이라고 털어놓기도 했다.

재벌총수나 최고경영자들은 일반인보다 하루 2∼3시간씩 더 ‘생활하는’ 것이 보통. 오전 7시 조찬회를 시작으로 저녁 만찬까지 빈 시간이 없다. 그만큼 수면이 부족하고 스트레스에 시달리기 마련.

기업인들은 이 때문에 운동에 ‘병적으로’ 집착하는 경우가 많다. 기업인들에게 골프가 인기를 끄는 것은 이 때문. 음주를 즐기는 박용오두산회장은 아무리 과음해도 반드시 새벽에 일어나 러닝머신을 이용해 달리는 것으로 유명하다.

<박래정기자>eco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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