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김수곤/'생산적 복지'로 가는 길

  • 입력 2000년 1월 5일 20시 00분


온 세계가 새 천년을 맞으면서 내세운 캐치프레이즈는 지식기반 사회의 구축을 통해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다. 이런 판국에 복지는 무슨 복지냐고 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생산과 복지는 두 마리의 토끼가 아니라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것이다. 생산이 없는 곳에 복지만이 있을 수 없고 복지가 약속되지 않은 생산은 무의미하다.

지난날 선성장 후분배 정책은 근로자의 인내심만 지나치게 강요한 결과 생산과 분배의 동시성이 깨어졌다. 지식기반 사회란 자본보다 사람에게 체화된 기술과 정보를 중시하기 때문에 인력자원의 형성과 배치, 동기유발이 발전의 핵심 전략이 된다.

김대통령의 신년사에서도 구조조정과 소득불평등 문제가 언급됐다. 지난 2년간 구조조정을 잘한 부문에서는 경쟁력이 되살아나고 있으나 다른 한편 영미 선진국처럼 소득격차는 더욱 확대되고 있다. 지금 걱정해야 할 것은 악화되는 분배구조를 개선할 수 있는 기반이 조성되고 있느냐 하는 문제이다. 조세에 의한 사회적 재분배에만 의존한다면 결코 소득불평등을 개선할 수는 없을 것이고 오히려 중산층만 몰락할 수 있다.

경쟁력 제고를 위한 구조조정에는 반드시 공평한 분배구조의 개편이 뒤따라야 한다. 노사관계도 단순한 힘의 논리가 아니라 노사공동의 이익을 위한 협력과 성과에 비례한 보상을 할 수 있는 토양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이 같은 토양 또는 노사문화는 무엇보다도 공평한 법질서와 그것이 존중되는 노사정간의 신뢰가 전제돼야 한다.

무슨 이유로든 간에 그 동안 구조조정이 착실히 진행되지 못한 부문에 대해서는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을 받았던 당시 계획했던 대로 조정이 추진되어야 한다. 경기회복에 편승해 비생산적인 부문이 계속 살아남는다면 생산도 복지도 다 망가뜨린다.

실업률이 수치상 하락한 것은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다. 앞으로 더 내려가야 하겠지만 공공근로나 고용유지 정책에 힘입어서가 아니라 실수요로부터 파생된 고용기회의 창출로 인한 것이라야 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생산적 복지가 목표로 하는 것이다.

독일 프랑스식 고용유지 정책과는 달리 영국에서는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을 계속 밀고 나감으로써 실업률을 전례 없이 3.6%까지 내릴 수 있었고 그것이 노동당에 의해서 그렇게 되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 준다. 실업자 개개인이 몸값은 올리고 눈높이는 낮추는 가운데 생산적 고용은 증대될 것이다.

경제활동 능력이 있는 노인인력을 경로라는 이름으로 사장시킬 것이 아니라 노인인력은행을 설치해 취업을 알선하겠다는 정부의 의지는 생산적 복지와 일치한다고 본다. 여성의 경제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보육시설을 확충하고 출산 육아지원을 늘리겠다는 의지도 생산적 복지 철학과 일치할 뿐만 아니라 장래 인구구조의 정상화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조치다.

700만 봉급생활자의 세금을 감면하겠다는 대목에 대해서는 한마디 고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해마다 정치인들은 갑근세 면세점을 상향조정함으로써 총 임금소득자 중 비과세대상 근로자 비율이 아직도 60%에 이른다. 단돈 100원만을 내도 좋으니 근로소득자는 소득세를 냈다는 자부심과 함께 정부의 막대한 지출이 자기 세금으로 충당됐다는 주인의식을 갖도록 해달라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생산적 복지의 알파요, 오메가이다.

근로자를 위한 성과급 지급, 재산 형성, 종업원 지주제의 확대 방안은 생산적 복지의 일환으로서 물론 바람직하다.

여기에 만족하지 말고 근로자가 얼마의 보수를 왜 받았는지를 쉽게 알 수 있도록 함으로써 각종 보상이 생산동기를 유발할 수 있도록 임금체계를 단순화해야 한다.

김수곤〈전경희대부총장·노사정위원회 공익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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