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포커스]현대 2세들 '금융업 경쟁' 벌이나?

  • 입력 2000년 1월 5일 20시 00분


‘현대 구조조정위원장→(99년 12월30일)현대자동차회장→(1월4일)인천제철회장.’

현대 박세용(朴世勇)회장에 대한 일련의 ‘깜짝 인사’는 누가 왜 결정했을까. 현대그룹의 대표적 전문경영인인 박회장의 거취가 지난 연말과 새해 벽두에 재계에 온갖 추측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 경영일선서 물러나 ▼

▽느닷없는 인사〓박회장은 왕회장(정주영명예회장)의 최측근으로 오너 일가에 이은 그룹의 실권자로 꼽히는 인물. 그룹 구조조정위원장과 상선 종합상사 회장을 맡고 있던 박회장은 지난해 12월 30일 정기인사에서 아무런 ‘인연’이 없던 현대자동차회장으로 ‘불쑥’ 옮기더니 5일만인 4일에는 다시 인천제철 회장으로 전보됐다. 인천제철은 곧 그룹으로부터 떨어져 나갈 예정이기 때문에 막강파워를 과시하던 박회장이 ‘느닷없이’ 경영일선에서 물러나게 된 셈.

지난 연말 그의 현대자동차 행에 대해 “현대차 경영진 보강”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던 현대는 이번에는 “인천제철의 계열분리 작업에 박회장의 전문경영 능력이 필요하다”고 이유를 달았다.

▽두 형제의 후계경쟁〓현대 주변에서는 그룹의 2세 오너인 정몽구(鄭夢九·MK)-몽헌(夢憲·MH) 형제의 ‘마지막 후계경쟁’이 벌어지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설득력있게 나돌고 있다.

▼ '후계경쟁' 불똥說 ▼

그룹의 공동회장인 두 사람은 97년부터 현대의 주요 계열사를 나눠 갖는 식으로 그룹을 분할 지배하고 있다. 특히 작년초 현대-기아차를 몽구회장이 새로 가져가면서 이같은 양분 구도는 더욱 확실해졌다.

MK는 그룹에서 가장 규모가 큰 자동차 부문을, MH는 핵심업종인 건설 전자를 비롯해 상선 상사 등을 관할하고 있다. 다른 핵심업종인 중공업은 6남인 정몽준(鄭夢準)의원의 몫으로 일찌감치 정해져 있다. 3남 몽근(夢根)씨는 이미 금강개발을 갖고 독립했다.

▽금융업이 관건〓현대의 2세 후계작업에는 아직 ‘미완의 과제’가 하나 남아 있다. 금융 보험 등 8개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는 금융업종을 과연 누가 가져가느냐는 것이다. 아랫 동생인 몽일(夢一) 몽윤(夢允) 등이 해상화재 종합금융 등을 갖고 떨어져 나갔으나 핵심인 증권 등은 아직 ‘주인’이 공석인 상태.

결국 박회장의 인사를 둘러싼 우여곡절은 금융업을 둘러싼 경쟁이 드디어 표면화되면서 빚어진 일이라는 게 현대주변의 관측이다.

박세용회장이 자동차로 온 과정에 대해 현대측은 ‘왕회장의 뜻’이라고 밝혔으나 사실은 MK측의 요청에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MK측은 왕회장의 측근이면서 MH에 가까운 박회장을 끌어오면서 이계안(李啓安)현대차사장을 현대증권으로 보내는 구상을 했다는 후문. 여기에는 증권을 맡고 있는 이익치(李益治)회장이 주가조작 사건에 연루돼 정상적인 경영활동을 수행하기 어렵다는 점도 고려됐다. MH계로 분류되는 이익치회장이 증권에서 물러나 박회장이 맡고 있던 상선 등을 맡고 박회장은 현대차로 오는 대신 증권에는 MK의 측근인 이사장을 보내 자기 관할하에 두겠다는 이른바 ‘빅딜’구상이다.

이 시나리오는 그러나 MH측의 반발로 무산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룹이 전략적으로 육성하고 있는 금융업의 핵심인 증권은 MH측으로서도 포기할 수 없는 부분. 결국 현대차는 정몽구-박세용-이계안이라는 ‘옥상옥(屋上屋)’ 구도가 돼버렸고 중간에 낀 박회장의 위치만 애매해져 5일간의 단명 회장으로 끝나고 만 것이다.

재계에서는 “두 형제간 후계경쟁의 마지막 승부처인 금융업을 차지하려는 물밑 경쟁은 점차 가시화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현대는 이같은 관측에 대해 “근거없는 추측”이라면서 “이번 인사는 인천제철의 구조조정에 박회장의 역량이 필요했기 때문이며 다른 속사정은 없다”고 말했다.

<이명재기자> mj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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