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박제균/바람직한 정치인회고록은

  • 입력 2000년 1월 5일 01시 21분


동아일보가 3회에 걸쳐 연재한 김영삼(金泳三)전대통령의 회고록에 대해 청와대와 전직대통령측은 분을 참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정상이 아닌 사람의 언행" "지능과 인격에 문제가 있는 사람"이라는 막말까지 쏟아져 나왔다.

실제 YS 회고록에는 자신의 행동은 합리화하고 다른 사람을 깍아내리는 듯한 인상을 주는 대목이 적지 않다. 90년 '3당합당'은 '구국의 결단'인 반면 87년 '6·29 선언'은 "내가 전두환(全斗煥)과의 영수회담에서 한말을 나열한 것일 뿐"이라고 했다.

노태우(盧泰愚)전대통령도 지난해 한 월간지를 통해 밝힌 '육성 회고록'에서 자신의 비자금은 "돈을 아끼다 보니 큰 돈이 남은 것"이라고 말했다. 또 YS에 대해서는 "국정운영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을 대통령으로 민 나와 모든 식자들을 색맹환자"라고 한탄까지 했다.

정치인의 회고록, 그것도 본인과 관련 당사자들이 생존해 있는 동안 발간되는 회고록은 논란을 불러일으키기 쉽다. 헨리 키신저 전미국국무장관은 그가 보좌했던 닉슨 전대통령이 세상을 떠난 지 5년이 지난 지난해에야 당시의 비화를 담은 회고록을 펴냈다.

96년 출간된 고 프랑수아 미테랑 프랑스대통령의 회고록은 지스카르 데스탱 전대통령 등 프랑스의 현역 정치인들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음에도 프랑스 국민 사이에서는 평가가 좋았다. 무엇보다 진솔한 자기반송이 있었기 때문이다.

미테랑은 이 회고록에서 "페탱(2차대전 때 독일 괴뢰정권의 수반)이 프랑스를 보호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며 괴뢰정권에 참여한 사실을 고백했고 "알제리전쟁 당시 법무장관으로서 실수를 저질렀다"고 시인했다.

누구의 회고록이든 자기 반성은 도외시한 채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식으로 일관한다면 후대는 고사하고 당장도 제대로 평가 받기 힘들다.

박제균 <정치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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