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총없는 전쟁' 뉴라운드

  • 입력 1999년 12월 2일 19시 47분


국내가 꼬리를 무는 로비스캔들과 정쟁(政爭)에 휩싸여 있는 동안 세계는 새로운 ‘무역전쟁’에 돌입했다. 이 ‘총없는 다국간 전쟁’은 지금 미국 시애틀에서 벌어지고 있다. 뉴라운드협상(새 다자간 무역협상)을 공식적으로 시작하는 세계무역기구(WTO) 135개 회원국 각료회의가 그것이다.

세계 수십개국에서 모여든 수백개의 비정부기구(NGO) 회원 5만여명의 격렬한 ‘뉴라운드협상 봉쇄시위’ 때문에 현지엔 비상사태가 선포되고 지역방위군이 동원됐다. 그러고도 회의는 예정보다 5시간 늦게야 겨우 개막됐으며 회담일정에 적잖은 차질이 빚어졌다. 이같은 상황도 ‘총없는 전쟁’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각국 NGO들의 주장은 무역자유화의 무한확대가 자국의 노동 환경 식량안보 및 인권까지 위협할 것이라는 경고, 뉴라운드협상이 선진국과 그 대기업들의 이익만을 꾀한다는 반발 등 각양각색이다. 각국 정부는 저마다 ‘내 논에 물대기’식으로 NGO들의 주장을 선택적으로 이용하려고 한다.

세계무역규범의 개편을 목표로 하는 이 협상에 임하는 각국 정부의 계산은 NGO들의 갖가지 입장보다 더 복잡하게 얽혀 있다.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농산물 수출국과 수입국, 수입품에 대한 반덤핑조치를 남발하는 미국 유럽연합(EU) 등과 반덤핑조치를 규제하자는 한국 일본 등의 이해(利害)가 마찰하고 있다. 이에 따라 3일(한국시간 4일) 이번 회의를 마치면서 발표할 각료선언문 내용을 둘러싸고 첨예한 공방이 계속되고 있다. 선언문에 담길 표현 하나하나가 뉴라운드협상 전반의 준거(準據)가 돼 각국의 이해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특히 미국에 주문하고 싶은 것이 있다. 뉴라운드협상이 가져다줄 이익의 국가간 균형을 배려하고 제3국 NGO들의 주장에도 귀기울이라는 것이다. 미국은 초대국의 압도적 힘과 산업 및 기술의 우위를 바탕으로 경제의 세계화(글로벌화)를 주도하고 있다. 또 그 연장선에서 뉴라운드협상을 자국이익 극대화에 초점을 맞추어 마름질하려는 인상이 짙다. 하지만 경제패권주의에 빠져 세계 각국이 처한 특수한 상황들을 도외시한 채 강압적으로 협상을 밀어붙이려 한다면 그 역풍과 부작용도 만만찮을 것이다.

한편 우리 정부는 무역확대를 통한 이익과 농업의 비교역적 특성, 선진국적 지위와 개도국적 위치의 양면성 등을 종합적으로 교량해 최선의 협상력을 발휘해주기 바란다. 정부는 아울러 뉴라운드협상을 둘러싼 국론분열 및 이에 따른 국내적 혼란과 소모가 최소화되도록 최종적 국익에 대한 국민의 합의를 이끌어내려는 노력을 병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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