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홍찬식/백지연씨의 '진실'

  • 입력 1999년 11월 24일 19시 07분


세간의 화제를 모아온 방송인 백지연씨의 명예훼손 사건은 백씨의 아들이 전 남편의 친자(親子)냐, 아니냐에 관심이 집중되어 왔다. 어제 열린 공판에서는 서울대병원의 유전자 감식 결과 친아들이 맞는 것으로 확인됐다는 소식이다. 백씨는 이에 따라 자신의 아들이 전 남편 아들이 아니라는 항간의 소문은 근거없는 것으로 밝혀졌다고 했다.

▽“그동안 사실이 아니라고 아무리 하소연해도 나를 믿어주질 않았다.” 백씨가 어제 공판이 끝난 뒤 기자들에게 한 얘기다. 자신이 이혼한 처지임을 들어 “이혼한 여자에 대한 편견이 아니냐”고도 했다. ‘진실’이 밝혀진 이상 그동안 소문을 사실인양 떠들었던 사람들은 속으로 꽤 뜨끔해할 것이다. 소문이란 것은 형태도 모양도 없지만 일단 사람들의 입에 올려지면 소문의 주인공을 인정사정없이 공격해 초토화한다. 소문에 굴복해 버리는 사람도 있다. 그저 시간이 지나기를 기다리면서 말이다. 그러나 백지연씨는 이에 맞섰다. 그의 당당함과 용기를 인정해야 한다.

▽여성, 특히 ‘성공한 여성’을 둘러싼 이런저런 악성 루머에는 대개 남성우월적 시각이 깔려 있다. 사회활동을 활발히 하는 여성의 경우 능력보다는 외모와 이혼경력 등 사생활에 관심이 집중되고 눈에 거슬리는 행동은 즉각 ‘설친다’는 소리를 듣는다. 허황된 소문을 의심하기보다는 ‘그러면 그렇지’하며 기정사실화하려 든다. 여자로서 성공하기도 힘들지만 성공을 ‘유지’하기도 힘든 곳이 우리 사회다.

▽여성과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남자들도 소문의 상처를 입기는 마찬가지다. 성공한 사람을 인정하고 장점을 치켜세우기보다는 근거없는 소문을 퍼뜨려 깎아 내리고 헐뜯는 경우가 많다. 소문보다 무서운 것이 잘못된 소문이 모두에게 그럴듯하게 먹혀드는 사회 분위기다. 이번 사건의 배후에는 이렇듯 일그러지고 뒤틀린 우리 사회의 자화상이 숨겨져 있음을 본다.

〈홍찬식 논설위원〉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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