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니엄칼럼]고건/삶의 질 존중되는 '청정시대' 열자

  • 입력 1999년 11월 14일 18시 50분


나는 다가오는 새 천년이 ‘청정(淸淨)의 시대’가 되기를 바란다. 돈봉투가 사라지고 원칙이 통하는 세상, 어린이가 밝게 자라고 약자가 존중받는 사회, 과꽃 분꽃이 피고 잠자리가 날아오는 동네, 꽃향기가 가득한 거리, 옛것과 새것이 서로의 향취를 더해주는 도심, 푸르른 산 아래 낙조가 아름다운 한강 갈대밭…. 이러한 것이 내가 꿈꾸는 21세기의 모습이다.

우리에게 20세기는 ‘혼탁의 시대’였다. 정치 경제 사회 환경 어디라 할 것 없이 모두 대립에 멍들고 욕심에 오염되었으며 유착으로 어지러웠다. 제국주의 이념전쟁 권위주의의 압제 성장만능주의의 폐해는 전지구적인 것이었지만 그 그림자는 지난 한세기 동안 동방의 한 은둔국에서 세계 경제의 주역으로 변모한 우리나라, 그 가운데에서도 수도 서울에 특히 길고 짙게 드리워졌다.

이제 그 그림자로부터 벗어날 때다.이제는 양적 성취만이 아니라 품격, 아름다움, 조화, 약자에 대한 배려,내면적가치에 대한 시민욕구가 커지고 있다. ‘삶의 조건’과 함께 ‘삶의 질’에 대한 배려가 요구되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 정부 기업 시민사회 모두 혼탁시대에서 벗어나 청정시대를 열기 위한 행동에 나서야 할 때이다.

지난날 우리는 작은 욕심에 집착한 채 거창한 일, 거대한 담론을 펼치는 데 익숙해 왔다. 이제는 그것을 바꾸어야 한다. 꿈은 크게 가지되 행동은 주변에서부터 시작할 때다. 지구의 환경을 걱정하되 자기집 앞부터 치우고 주변부터 맑게 바꾸는 노력으로부터 청정시대가 열린다. 눈앞에 닥친 세기의 전환, 세번째 천년의 시작은 우리에게 행동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고건(서울특별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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