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언론장악 음모' 사실이라면

  • 입력 1999년 10월 26일 18시 36분


한나라당 정형근(鄭亨根)의원이 폭로한 현정권의 ‘언론장악 음모’문건은 한마디로 충격적이다. 물론 청와대와 국민회의, 문건을 작성한 것으로 지목된 이강래(李康來)전청와대정무수석은 이 문건이 정의원측에 의해 날조된 것이라며 강력 부인하고 있는 만큼 ‘사실이라면…’이라는 단서를 붙여야 할 것이다. 따라서 무엇보다 시급한 일은 문건이 정말 이강래 전정무수석에 의해 작성된 것인지, 아니면 여권의 주장처럼 정형근의원이 날조한 것인지 그 진위를 밝히는 것이다. 국회의 국정조사가 됐든 특별검사를 임명하든 실체적 진실을 밝힐 수 있다면 어떤 방법도 회피해서는 안된다. 이는 국민의 기본권과 직결되는 언론자유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진위 여부를 떠나 이와 같은 문건이 공개됐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이번 일은 국민과 정부, 언론 모두에 심각한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 무엇보다 사회적 공기(公器)라 할 언론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증폭되리라는 점이다. 그러잖아도 과거 권력의 ‘언론 조정’과 정도(正道)에서 일탈된 일부 언론의 행태가 맞물리면서 언론을 보는 국민의 눈길이 부드럽지만은 않았던 터에 모든 언론을 싸잡아 범죄자로 몰아세우는 듯한 문건의 일부 내용은 부정적 시각을 한층 부추길 위험성이 크다.

문건은 언론의 제도개혁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최근까지 각 언론사가 상습적으로 자행하고 있는 탈세, 누세, 부당 내부거래와 특혜융자 등에 대한 강력한 시정을 요구하고 이를 위반시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도록 해야 한다”고 적고 있다. 또 언론 장악의 대응책으로 “오너 일가의 불법, 탈법행위 등에 대해서도 철저한 조사를 병행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그렇다면 현재 한국의 모든 언론과 그 사주들이 탈세와 불법, 탈법을 일삼는 범죄자란 말인가. 그런데도 이 정부는 묵인하고 있다는 소리인가. 그같은 혐의가 있는 언론사와 사주라면 마땅히 조사하고 법에 따라 처벌해야 할 것이다. 정부 안팎에서 ‘언론개혁’이란 소리가 자주 나오고 있다. 진정 ‘언론개혁’을 위해서도 차제에 일괄 세무조사를 실시해 들춰낼 것이 있으면 들춰내고 책임을 물을 것이 있다면 물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언론에 대한 불신만 조장하면서 과거 권위주의정권에서처럼 ‘공작’차원의 수법으로 언론을 장악하려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시대착오적인 생각이다.

이번 문제는 여야 공방으로 끝낼 일이 아니다. 정부 여당은 당당하게 문건의 진위를 밝히는데 앞장서야 한다. 이번 일은‘국민의 정부’의 정통성과 직결되어있는 중대한 사안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한나라당도 폭로를 뒷받침할 수 있는 보다 명확한 증거를 내놓을 수 있어야 한다. 진실규명을 위해서는 한나라당도 정부여당과 똑같은 책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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