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전진우/‘국감 반성문’

  • 입력 1999년 10월 19일 20시 09분


‘국감시민연대’가 국회의원들의 점수를 매긴다고 했다. 국정감사 하면 으레‘높으신 의원나리’들이 만만한 피감기관 기관장이나 조지고 남이 한 말 또 하면서 대접이나 받다 보면 끝장이 아니더냐고 지레짐작에 외눈을 치켜뜨곤 하던 이들도 어디보자, 입맛을 다시기도 했을 터이다. 자기 성적표 까발리기는 뭣해도 남의 성적 몇 점인지 들여다보는 재미는 언제나 쏠쏠한 법인데다 상대가 ‘선량’이라는데야 더욱 군침이 돌 일이 아니던가.

▽의원들로서는 ‘앗, 뜨거워라’할 수밖에. 그렇잖아도 다음 총선이 코앞에 닥쳤는데 깐깐하고 외통수이기 십상인 시민단체가 점수를 매긴다고? 누구누구는 정책자료집도 만들고, 또 누구는 말솜씨가 좋고, 누구는 똑똑한 보좌관 덕에 스타가 된다지만 이도저도 아닌 처지에 낙제점수라도 받는다면 어쩐다? 신문에 날 게 뻔하고 그걸 내년 선거때 상대방이 수만부씩 복사해 돌린다면? 아이구, 안되지 안되고 말고.

▽결국 전문성도 없이 뭘 기준으로 평가하느냐, 명색이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이 시민감시단 눈치나 볼 수 있느냐, 그런 명분으로 10개 상임위가 시민감시단의 국감방청을 막았다. 그러나 한 야당의원이 한 말을 들어보면 그들이 몸싸움까지 벌이면서 시민감시단을 쫓아낸 이유를 알 만하다. “국감시민연대가 감사를 참관했을 때는 감사분위기가 진지했는데 그들을 내쫓고 나니까 질문도 백화점식 나열에 겉핥기로 흐르더라.”

▽국민회의 부총재인 김근태(金槿泰)의원이‘국감반성문’을 냈다. 반성인즉 “벼락치기 공부로는 15개 기관을 제대로 감사할 수 없더라. 내 벼락치기 국정감사가 국민 전체에 미칠 영향을 생각하니 등골이 뻑적지근하다”는 것이다. 몇몇 ‘선량’들은 이런 ‘반성문’ 역시 ‘언론플레이’ 아니냐고 눈을 흘길지 모르겠다. 하나 그전에 자기 등골은 괜찮은지 만져라도 봐야 하지 않을까.

〈전진우 논설위원〉youngji@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