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전성철/재벌 지배구조가 문제다

  • 입력 1999년 10월 14일 18시 26분


▼송병락교수의 ‘재벌옹호론’에 대해▼

정부의 재벌 정책에 대한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송병락(宋丙洛)서울대부총장은 최근 전국경제인연합회 주최 모임에서 “세계적인 대기업들은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선단으로 정렬하고 있다”며 재벌의 문어발식 선단식 경영을 깨려는 정부 정책을 비판했다.

정부는 이런 비판을 받아 마땅하다. 예를 들어 GE같은 기업은 문어발식 선단식 경영을 하면서도 나라의 떡을 엄청나게 키우고 국민의 존경을 받는다. 이익만 내고 일자리만 만들 수 있다면 문어발 ‘할아비’면 어떠한가? 한국 재벌의 문제는 문어발이 아니라 바로 이익을 못낸다는 것이다. 선진국 거대 기업이 문어발이면서도 문제가 없는 것은 바로 이익을 내기 때문이다.

한국 재벌은 왜 국제통화기금(IMF)을 몰고 올 정도로 이익을 못낼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회장이 이익을 못 내도 쫓겨날 염려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한국 재벌 회장은 회사가 망하지 않는 이상, 부도가 나지 않는 이상 절대 쫓겨나지 않는다. 그러면서 마음대로 한다. 어떠한 내부 견제도 없다. 한 사람의 권위와 권력에 이렇게 나라의 부의 몇십%와 수십만의 일자리를 맡겨 두어도 괜찮은 것인가?

북한의 상황을 보라. 저 참혹한 현실은 결국 쫓겨날 염려가 없는 한 사람에게 권력이 집중된 결과 이상의 아무 것도 아니다. 지금 한국은 대우 쇼크 하나로 온 나라 경제가 흔들흔들 하고 있다. 자칫 한국 경제가 언제 어떻게 또다시 엄청난 혼란으로 빠질지 모른다. 어떠한 견제도 구애도 받지 않는 한 사람이 수백조원의 돈, 그것도 거의 전부 남의 돈, 그리고 수십만의 일자리를 마음대로 좌지우지하게 해 두었던 결과이다.

IMF 관리체제 이후 온 나라가 긴축과 절약을 위해 젖 먹던 힘까지 다하고 있을 때 유독 대우만 ‘늘려라, 빌려라’ 하면서 전 세계에 돈을 뿌리고 다니겠다고 결심하는 과정에 어느 누구도 타당성을 검증할 기회도 권한도 없는 그런 체제가 문제인 것이다. 그 결과로 우리 국민은 앞으로 몇 십조원의 쌈짓돈으로 대가를 대신 치러야 한다.

산업화 과정에서 김우중회장의 공이 없었던 것은 물론 아니다. 아니 크다. 마찬가지로 산업화 과정에서 재벌의 공은 컸다. 그러나 ‘쫓겨나지 않는 절대 권력’이라는 제도가 가져올 수 있는 그 엄청난 위험은 사람의 공과를 떠나 현대 사회에서는 없어져야 하는 것이다. 도대체 98% 남의 돈을 가지고 절대 권력을 누린다는 것이 말이 되는 것인가?

그래서 이제 그 제도를 바꾸자는 것이다. 바로 재벌 회장이 잘못하면 쫓아낼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회사가 망하기 전에라도 경영을 못하면 쫓아낼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주식을 뺏자는 것이 아니다. 그냥 경영에서 물러나게 하자는 것이다. 바로 지배 구조를 개혁하자는 것이다. 빅딜 하지 말라고 해도 살기 위해서는 한다. 그것이 바로 선진국이 하는 방식이다.

재벌 개혁을 향한 이 정부의 취지와 의지는 평가받아야 한다. 그러나 엉뚱한 데 너무 많은 에너지가 낭비됐다.

온갖 법석을 떨면서 정권을 걸고 한 빅딜이 지금 생각해 보면 그렇게 할 만한 가치가 있었던가? 재벌이 달라진 것이 무엇이 있는가? 문어발 가지고 그렇게 법석을 떨 필요가 있는 것인가?

모든 에너지를 한 군데로 모아야 한다. 바로 지배구조의 개선이다. 그것만 하면 딴 것은 따라오게 돼 있다. 그것만이 재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전성철(경제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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