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강준혁/서울 도심에 음악이 흐르게

  • 입력 1999년 9월 10일 18시 37분


1922년 6월11일 밤 미국 로스앤젤레스 할리우드 근처 볼톤계곡에서는 이 완만한 계곡이 생성된 이래 최초로 교향악단의 음향이 은은히 퍼지고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넓고도 길게 드려진 비탈위의 나무벤치에 앉아 ‘별빛아래 펼쳐지는 마술의 소리’에 취해 있었다. 그 후 77년이 흐르도록 이 계곡에 여름이 찾아 들면 어김없이 이 마술의 소리는 별빛 아래 퍼져나가곤 하였다. 이제는 세계가 부러워하고 캘리포니아 주의 심벌이 되어버린 1만8000석 규모의 ‘할리우드 볼’ 야외극장과 ‘할리우드 볼 오케스트라’에 대한 이야기이다.

국내에서는 안익태 선생의 ‘한국 환상곡’을 최초로 음반에 담은 오케스트라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할리우드 볼 오케스트라’는 실상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의 다른 명칭에 불과한데 이는 매년 6월부터 9월에 이르는 약 12주 동안의 할리우드 볼 시즌에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이 이곳에서 연주하기 때문이다. 카라얀, 번스타인, 발터, 스토코프스키 같은 거장들이 이곳에서 연주했고 루빈슈타인, 피아티고르스키, 아이작 스턴, 파바로티 등의 무수한 전설속의 음악가들이 ‘마술의 소리’를 만들어 낸 일을 거들었다.

누레예프, 폰 테인 같은 세기의 무용가도, 프랭크 시내트라, 냇킹 콜, 스트라이샌드 같은 가수도, 사이먼과 가펑클, 비틀스 같은 그룹도 마술사로 등장했다. 문화적 삶을 갈망하는 많은 로스앤젤레스 시민들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이 마술의 소리를 다시 듣기 위하여 다음 여름을 기다린다고 하니 우리로서는 부럽기 한이 없는 노릇이다.

언제부터인지 우리의 생활반경에서 산이나 언덕, 계곡들은 빠져나갔다. 으레 주말이나 되어야 배낭에 물병차고 찾아나서는, 마음먹고 찾아나서야 되는 장소로 바뀌어 버린 것이다. 서울시민들은 남산의 야외 음악당을 어린시절의 서커스처럼 잘 기억한다. 행사가 없으면 그 넓은 풀밭이 애들의 공차는 놀이터였지만, 간혹가다 조개 모양의 무대에서 음악회라도 열리게 되면 많은 시민들이 줄줄이 남산길을 걸어 올라오곤 했다.

음악회가 아니더라도 남산길은 호주머니 가벼운 연인들이 즐겨찾는 데이트 코스였으며 가족끼리 바람 쐬러 나오게 되면 으레 찾는 장소였기에 많은 시민들에게 남산 야외음악당으로의 발걸음은 부담없는 것이었다. 이제 남산은 우리의 ‘발걸음’에서 멀어져 차를 타고 스쳐지나가는 산이 되었다.

서울의 좌청룡격인 낙산은 어떠한가. 바로 코밑에 세계적인 명소인 대학로를 두고 있는데도 낙산의 이름조차 모르는 시민이 얼마나 많은가. 그동안 낙산 정상위에 어울리지도 않는 낡은 고층 아파트가 있었기에 산이라는 호칭마저도 어색할 정도였는데 다행히도 서울시가 그 일대를 크게 정비하여 낙산의 모습을 되찾고 시민공원을 새로이 조성한다니 반갑기 그지 없다. 기왕 손을 댈 요량이라면 ‘할리우드 볼’같은 서울시민이 자랑스러워 할 문화공간을 낙산에게 선물함이 어떨는지. 그래야만 바라보는 낙산이 아니라 찾아가는 낙산이 되지 않는가 싶다.

이미 그 역량을 충분히 발휘하고 있는 할리우드 볼을 개선하기 위해 로스앤젤레스지역 자치단체가 92년부터 4300만 달러를 들여 장기계획을 수립, 수행하고 있단다.

우리는 언제나 낙산위의 멋진 야외음악당에서 아이들과 함께 할리우드 볼이 자랑스러워하는 문구처럼 ‘별빛아래 펼쳐지는 마술의 소리’를 듣게 될까.

강준혁<문화기획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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