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통령은 내각제 공약을 지키지 못한데 대해 국민에게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하지만 당초 금년말까지 하기로 했던 내각제 개헌을 연기하기로 자민련과 합의했다고만 했지 언제 다시 할 것인지, 또는 완전히 포기하는 것은 아닌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우선 정치를 바로잡겠다고 했다. 그러나 내각제를 하느냐 마느냐는 정치개혁의 몸통인 권력구조의 문제다. 이런 근본문제를 분명히 하지 않고는 정치개혁이 제대로 되기 어렵다. 더구나 현재의 비민주적 정당구조와 1인 보스정치에 대한 개혁없이 진행되는 정치개혁은 자칫 정권의 이해득실이나 정파간 타협의 결과물로 전락할 위험성이 크다.
김대통령은 지난해 대통령 취임연설에서도 정치개혁 우선을 강조했다. 그러나 정치개혁은 1년 반이 지나도록 한걸음도 진전되지 못했다. 경제위기때문이라고는 하나 변명일 뿐이다. 여야 정치권의 기득권 지키기가 정치개혁의 발목을 잡아온 것이다. 따라서 김대통령의 정치개혁 재천명은 환영할만하다. 그러나 벌써부터 내년 총선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김대통령과 집권여당이 과연 정치개혁에 최우선순위를 둘지는 의문이다. 정당 민주화는 외면한 채 전국정당화를 앞세운 몸집 불리기에나 열심이라면 정치개혁은 다시 한번 시늉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김대통령은 부패척결을 강조하면서 “공정한 법집행을 통해 밝고 바른 법치를 한층 발전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또 지역주의와 관련, “대통령으로서 인재등용에 있어서나 예산배정에 있어 어떠한 지역차별도 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런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대통령은 “국민을 하늘같이 받들겠다”는 말도 빠뜨리지 않았다.
그러나 과연 국민이 김대통령의 이런 말에 얼마나 고개를 끄덕일지 다시 한번 생각해볼 일이다. ‘옷로비’ 의혹에서부터 조폐공사 파업유도의혹에 이르기까지 최근 벌어진 일련의 사건이 공정한 법집행으로 처리됐다고 보는 국민은 드물다. 더구나 김현철(金賢哲)씨에 대한 변칙사면은 국민의 강한 반발을 불러일으키지 않았는가. 우리가 김대통령의 ‘자기 반성’과 현실인식의 문제를 거론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겸허한 자기반성과 철저한 현실인식 없이는 미래의 비전을 볼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