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준칼럼]마키아벨리가 보는 한국정치

  • 입력 1999년 7월 30일 18시 44분


마키아벨리는 흔히 권모술수의 대가로 인식되어 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천박한 사람이 아니었다. 마키아벨리 연구자들이 지적하듯 ‘여우의 교활한 지혜’를 강조한 문제의 ‘군주론’은 조국의 위기가 안타까웠기에 구국의 지도자를 길러낸다는 우국지사의 심정에서 집필됐던 것이지 곡학아세(曲學阿世)로써 오로지 출세 길을 찾겠다는 야심만으로 집필된 것은 아니었다. 마키아벨리에 대한 정치학계의 이러한 평가를 염두에 두면서, 마키아벨리를 ‘소생’시켜 오늘날의 한국 정치를 논평하도록 부탁해 보자.

첫째, 지역적 분열화 경향에 개탄할 것이다. 마키아벨리는 이탈리아가 여러 갈래로 쪼개져 서로 싸울 뿐만 아니라 주변국들에 이용당하는 현실에 비분강개했으며, 그렇기에 이탈리아를 통일할 영걸스러운 군주가 나타나기를 바랐다. 그러했던 만큼 이미 동서 지역 갈등이 심한 이 좁은 땅 안에서 한 전직 대통령은 마땅히 내놓아야 할 부정한 거액의 비자금은 내놓지 않은 채 그것을 밑천삼아 ‘TK 지역당’을 만들고자 한다는 소문의 중심에 서 있고, 한 다른 전직 대통령은 나라를 망쳤다는 비판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내놓고 ‘PK 지역당’을 만들려는 데 대해 어찌 개탄하지 않겠는가.

둘째, 정치 지도자들에 대한 국민의 팽배한 불신을 경계할 것이다. 마키아벨리는 정치 지도자들이 국민의 신뢰를 잃고 국민으로부터 유리되는 상황을 심각한 국가적 위기라고 보았다. 그래서 통치자에게 민중의 사랑과 믿음을 얻도록 노력해야 하며 모든 일에서 모범을 보여야 한다고 가르쳤다. 오늘날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정치인들에 대한 국민의 불신은 의회 민주주의의 장래를 걱정케 할 정도로 위험스러운 수준에 도달했다. 통찰력이 뛰어난 마키아벨리가 어찌 이 현실에 경고장을 보내지 않겠는가.

셋째, 대통령의 측근들을 질책할 것이다. 마키아벨리는 통치자에게 측근을 잘 골라 쓰고 잘 관리하라고 강조했다. 성실하고 정직하며 두려움 없이 직간하는 사람, 자기 개인의 욕심이나 정치적 목표가 아니라 국가의 공동선(共同善)을 위해 일하는 사람을 옆에 두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것은 달리 말해 측근은 그렇게 처신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정부건 당이건 대통령의 측근들이 할 말을 제대로 하지 않거나 못해서 국정이 이렇게 꼬이고 있다는 세평을, 심지어 집권층의 한 모퉁이는 벌써 다음 정권까지 내다보며 정치자금을 마련하느라 부패해가고 있다는 세평을 마키아벨리는 날카롭게 지적할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반드시 덧붙일 것이 있다. 마키아벨리는 측근의 잘못에 대한 최종적 책임은 통치자 스스로에게 있음을 가르쳤던 사람이다. 통치자는 측근보다 훨씬 더 사려가 깊어야 한다, 시대가 변했는데도 지난 시절의 구태의연한 사고 방식에 매달려 언행하는 인사를 배제시켜야 한다, 황송한 나머지 정직하게 말하려 하지 않는 측근에 대해서는 불쾌한 표정을 지어야 한다, 아랫사람이 진실을 말한다고 해서 화를 내선 안된다, 아첨꾼을 멀리 해야 한다, 통치자를 속이고 농락하려는 측근이나 부패한 측근은 무자비하게 잘라내야 한다 등등의 준칙을 앞세우면서 통치자는 언제나 주변을 돌아보며 행여 실수하는 일이 없는가 스스로를 경계하라고 타일렀던 것이다.

넷째, 부정부패의 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는데 대해 크게 우려할 것이다. 마키아벨리는 지배층의 부정부패뿐만 아니라 국민의 부정부패에 대해서도 따끔하게 나무랐다. 이탈리아가 위 아래 다 썩었다는 뜻에서, 특히 지도층과 국민이 모두 돈에 따라 이렇게 움직이고 저렇게 움직일 정도로 기강과 도덕이 타락한 것에 분노하면서 ‘부패 국가’라는 말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오늘날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마키아벨리는 자신의 ‘부패 국가’개념이 어쩌면 이렇게 재현될 수 있느냐며 한탄하지 않겠는가.

다섯째, 지나친 타협적 정치 행태를 질타할 것이다. 여기 인심도 얻고 저기 인심도 얻겠다고 무원칙하게 타협적으로 정치를 하다가는 나라가 망하고 만다고 경고하면서 불의의 세력과는 타협 대신에 분명한 선을 그을 것을 권고했다. 이 점은 내년 총선에 대비하고자 신당 창당을 추진하는 정치인들이 반드시 경청해야 할 대목이라 하겠다.

김학준〈본사편집논설고문·인천대총장〉ha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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