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窓]선대인/장관-노숙자의 「심야 대화」

  • 입력 1999년 7월 21일 18시 48분


“우리에게 제대로된 일자리를 줘보십시오. 우리도 노숙생활을 벗어나고 싶습니다.”

“노숙자 쉼터로 들어가십시오. 공공근로사업에도 참여할 수 있습니다.”

“에이, 도움이 안됩니다.”

21일 오전 1시반경 서울역광장에서는 이색적인 모임이 벌어졌다. 차흥봉(車興奉)보건복지부장관과 수행 직원 5명이 오전 1시부터 서울역지하도 등을 둘러본 뒤 서울역 광장에서 노숙자 10여명과 1시간여동안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눈 것이다.

차장관은 이날 반팔 여름잠바 등 간소한 차림으로 노숙자들에게 일일이 악수를 청하며 “보건복지부장관입니다. 불편한 것이 있으면 스스럼없이 말씀해주십시오”라며 고언(苦言)을 요청했다. 차장관의 요청에 노숙자들은 ‘노숙자 쉼터의 규율이 세다’ ‘일당 2만원선인 공공근로사업 노임이 너무 낮다’‘정부의 말과 행동이 다르다’는 등의 불만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인천에서 공사장 인부생활을 했다는 한 노숙자는 “지금까지 숱한 장관과 정치인이 대책마련을 약속했지만 한번도 이뤄진 적이 없다”며 “장관님이 무슨 말씀을 하더라도 믿지 않겠다”고 언성을 높이기도 했다.

차장관은 “정부는 기초적인 생활을 할 수 있는 일자리와 숙식시설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여러분들이 이곳을 벗어나 자립하려는 마음을 갖는 일입니다”라고 강조했다.

1시간여동안 토론을 마치고 서울역을 떠나면서 차장관은 “지금 서울역 노숙자 대부분이 부랑자화된 것 같다”며 “자립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한데…”라며 아쉬워했다.

〈선대인기자〉eodl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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