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바담 風」하다 불 낸 정부

  • 입력 1999년 7월 12일 18시 34분


일요일 대낮에 서울 정부세종로청사에서 일어난 불은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다. 피해를 본 곳은 이 청사 4층에 있는 통일부의 2개과로 재산피해는 1500만원 정도여서 큰 불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청사는 국무총리실을 비롯, 통일부 외교통상부 교육부 행정자치부 등 주요부처들이 들어 있는 정부의 상징적이면서도 핵심적인 건물이다. 그런 점에서 이날 불은 충격과 우려를 자아냈다.

중앙부처들이 무슨 큰 일이 발생하면 아래쪽으로 이런저런 지시는 잘 내리면서도 막상 자신들의 문제는 안이하게 대처해 왔음을 이번 불은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경기 화성의 씨랜드 청소년수련원 화재참사가 죄없는 새싹들을 무더기로 앗아간 직후에도 정부는 공공건물 등 다중이용시설의 안전점검을 강조했다. 정부는 이번 불로 ‘나는 바담 풍(風) 해도 너는 바람 풍 하라’는 격이 되어버렸으니 이러고도 중앙정부의 영(令)이 설 것인지 모르겠다.

이번 불은 정부종합청사의 재난관리 시스템이 얼마나 허술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줬다. 화재원인에 대해서는 ‘선풍기 과열’이라는 경찰발표에 대해 통일부가 ‘졸속수사’라며 반발하고 있어 수사과정을 지켜봐야 할 것 같다. 그 원인이 어디에 있든 정부종합청사의 방재(防災)시스템에 문제가 있는 것은 틀림 없는 사실이다. 설령 불가피한 원인으로 불을 사전예방하지 못했다면 사후에라도 대처를 빈틈없이 했어야 했다. 이 청사에는 스프링클러 시설이 없는데다 층마다 설치된 화재경보기조차 오작동을 우려해 꺼놓은 상태였다니 어리둥절할 따름이다. 꺼놓으려면 무엇하러 설치했는가. 안전불감증이 해도 너무했다.

일요일이 아닌 평일에 불이 났다면 어떠했을지를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수많은 공무원들이 화재사실을 뒤늦게 알고 우왕좌왕하다가 대형참사를 빚지 않았을까. 이날 각 부처에서 당직근무중이던 공무원들은 불난 사실을 알려주는 구내방송조차 없어 소방차가 출동한 뒤에야 안 경우가 많았다니 한심하기 짝이 없다. 긴급시에 대처하는 정부의 모습이 이러고서야 어떻게 국민을 안심시키고 믿게 할 수 있을지 자문해보기 바란다.

인명도 중요하지만 불이 난 통일부 이산가족과와 인도지원기획과에는 최근 남북교류에 관한 주요서류가 많이 보관돼 있었다고 한다. 이산가족상봉 신청서류와 비료 등 대북(對北)지원 등에 관한 서류가 많았다니 대부분 전산입력돼 있다고는 하나 미덥지가 않다. 70년 준공이후 별일이 없었다고 해서 국가기간시설의 방재를 이렇게 허술하게 방치해도 되는가. 재난관리 시스템을 총체적으로 재점검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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