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짜맞추기 「해명성 수사」

  • 입력 1999년 6월 2일 18시 44분


재벌과 장관급 부인들의 ‘옷 로비’의혹사건을 과연 검찰이 엄정하게 파헤칠 수 있겠느냐는 당초 의구심은 역시 헛된 것이 아니었다. 사실 바로 전직 검찰총장이자 검사들의 인사권을 쥔 현직 법무장관의 부인을 검찰이 수사한다는 것 자체가 현실적으로 무리일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수사에 앞서 김태정(金泰政)장관의 사퇴를 요구한 시민단체 등의 주장은 합당한 것이었다. 그런 정도(正道)를 지키지 않은 이번 사건 수사는 예상대로 진행과정과 결과에 많은 흠집과 의혹을 남겼다. 한마디로 장관부인을 위한 해명성 수사라고밖에 할 수 없다.

당초 수사를 하지 않겠다던 검찰이 대통령의 지시로 마지못해 수사를 시작한 것부터 ‘원초적 한계’를 안고 있었다. 수사의 실마리를 법무장관 부인 연정희씨가 신동아그룹회장 부인 이형자씨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하는 형식에서 찾은 것도 문제다. 즉 고소인은 피해자, 피고소인은 가해자라는 법적 신분의 제약이 진상규명을 어렵게 만든 요인의 하나였다. 고소가 아닌 검찰의 인지(認知)수사 형식을 고려했어야 했다.

수사가 처음부터 연씨에 대한 ‘해명성’으로 흐르고 검찰이 그를 과잉보호한 대목은 기본적으로 공정성을 잃은 것이다. 연씨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증언만을 취하고 불리한 증언은 애써 버린 흔적도 검찰발표문에 역력하다. 신동아 최순영회장 사건 담당검사가 그 부인의 조사를 맡은 것도 납득할 수 없는 점이다. 구속된 남편을 인질로 한 ‘협박성 수사’가 아니었다고 검찰은 자신할 수 있는가. 고소사건 당사자인 연씨와 이씨의 전화통화를 주선해 화해를 유도한 것은 로비의혹의 진상을 밝혀야 하는 검찰의 임무와는 거리가 멀다. ‘짜맞추기 수사’라는 비난이 나오는 것도 그 때문이다.

검찰은 그동안 언론이 제기한 숱한 의혹들을 제대로 풀지 못했다. 우선 호피무늬 코트와 관련한 의혹을 보자. 사직동팀 조서에는 연씨 본인이 “기도원에 간 날 코트를 입었다”고 진술한 것으로 되어 있으나 검찰은 연씨가 반품하려고 1월2일 승용차 트렁크에 보관했다가 여러 사정상 5일에야 돌려줬다고 발표했다. 사직동팀의 기록이 잘못된 것인가, 아니면 연씨가 착각한 것인가. 돌려주려면 쇼핑백에 넣는 것이 상식이지 입거나 팔에는 왜 걸쳤는가.

이 사건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인 연씨와 전통일부장관 부인 배정숙씨간의 대질신문을 하지 않은 것도 의문이다. 검찰 발표대로 ‘로비’가 배씨 머릿속에만 그려져 있던 ‘실체가 없는 것’이라면 이씨에게 대납요구했다는 2천4백만원이란 액수는 어떻게 나온 것인가. 이런 숱한 의혹때문에 법무장관을 바꾼뒤 재수사해야 한다는 여론도 만만치않다. 이 사건을 계기로 고위공직자 및 그 가족 등의 비리에 대한 수사의 공정성 중립성을 담보할 제도적 장치를 진지하게 강구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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