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민심은 왜 떠났는가

  • 입력 1999년 6월 2일 18시 44분


검찰이 발표한 수사 결과대로라고 하면 그동안 온 나라 안을 시끄럽게 한 ‘옷로비 의혹 사건’은 몇몇 고위층 ‘사모님들’이 철없이 저지른 ‘실체도 불분명한 실패한 로비’에 지나지 않는다. 한마디로 별일도 아닌 것을 언론이 ‘마녀사냥식 여론몰이’로 부풀려 민심만 흉흉하게 만들었다는 식이다. 당연히 ‘죄없는 법무부장관’이 자리를 물러나서는 안된다. 과연 그런가.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이 정부가 정말 그렇게 보고 있다면 그것은 ‘옷로비 의혹’따위에는 견줄 수도 없을 정도의 심각한 문제라고 아니할 수 없다. 이번 사건의 본질은 단순히 어느 장관 부인이 옷을 받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다. 민심이 분노하는 것은 도덕성과 개혁을 앞세우는 이 정부의 고위층이 보인 전형적인 도덕적 해이에 있다. 지금이 어느 때인가. 거리는 아직 실업자로 넘쳐나고, ‘못가진 자’들의 살림살이는 갈수록 쪼들리고 있다. ‘IMF위기’의 한복판에 있던 지난해에는 불과 몇천만원이 없어 부도를 낸 중소기업인 가장이 가족들과 동반자살을 하고, 서울역 지하도에는 노숙자들의 참혹한 행렬이 그치지 않았다.

그런데 바로 그 무렵에 이 정부의 현직 장관부인들은 떼지어 고급의상실에 몰려다니며 몇십만원짜리 블라우스를 선물하네, 몇천만원짜리 밍크코트를 입어보네 하는 한편으로 ‘비가 올 것 같으니 우산을 준비하라’는 ‘추악한 거래’까지 시도했다. 그리고 당사자의 말이 어떻든 그 중심에 현직 검찰총장 부인이 있었다. 그리고 그 검찰총장은 여러 ‘흠’이 있음에도 곧 법무부장관으로 입각했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언론의 ‘마녀사냥식 여론몰이’란 말인가.

김대통령과 이 정부는 김태정(金泰政)법무부장관을 물러나게 하는 것이 대통령의 통치권에 누가 되고 여론에 밀리는 꼴이 된다고 보는 것 같다. 그러나 입각과정에서부터 문제가 됐던 장관을 감싸안는 것이 여론에 밀리지 않는 ‘강한 정부’인지 묻고 싶다. 여론과 민의를 바탕으로 한 정부만이 강한 정부가 될 수 있다. 김대통령과 이 정부는 왜 민심이 떠나고 있는지를 ‘비운 마음’으로 보아야 한다. 밀려서는 안된다는 ‘닫힌 마음’으로는 떠난 민심을 돌아오게 할 수 없다.

민심이 떠나게 된 것은 비단 이번 ‘장관 사모님들 행태’ 때문만은 아니다. 여론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관(官)주도로 밀어붙이는 ‘제2건국운동’을 비롯해 ‘고관집 절도 사건’에서 드러난 고위층의 모습, 그리고 말뿐인 정치개혁의 뒷전에서 벌어진 ‘돈선거’와 그에 대한 수사조차 미적거리고 있는 검찰 등등, 50년만의 여야 정권교체를 이루었다는 이 정부에 대한 기대와 믿음이 차츰 실망과 배신감으로 변하면서 민심이 돌아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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